2025.4.3.(木曜日, 93rd/365) “대한민국이 부활할 수 있을까?”
- Chulhyun Bae
- 4월 3일
- 4분 분량
2025.4.3.(木曜日, 93rd/365) “대한민국이 부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가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정치제도의 최악인 대통령제가 독재자를 양산하는 통로가 되었다. 오늘날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 대한민국, 터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제의 끝판들이다. 그제 광화문과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면서, 왜 우리는 길거리에서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갱생할 수 있는가?
여기 그림 한 장이 있다. 카라바조가 1609년, 쓸쓸히 해변가에서 병에 걸려 홀로 죽기 전에 그린 그림이다.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가름하지 못하고 아직 죽어 있는 자신의 숨으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라사로 그렸다. 카라바조도 자신도 부활을 확신하지 못해, 그리스도의 호명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카라바조는 몰타에서 성요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십자군 전쟁부터 이곳에 거주한 성요한 기사단을 위해 그림을 그린 댓가였다. <세례 요한 참수>와 이 기사단의 대장이자 대법관을 지낸 알로프 드 위냐쿠르르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이 기사단이 자신이 1606년에 로마에서 저지른 살인죄를 사면하는 청원 편지를 교황에게 보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불길 같은 성격과 폭력은 그를 암울한 운명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몰타에서 다른 기사를 모욕하여 결국 싸움으로 번져, 시칠리아의 시러큐스로 도망쳤다. 위냐쿠르는 카라바조를 몰타의 수도 발레타로 데려오기 위해 체포조 기사단을 파견하였다. 카라바조는 시러큐스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가 그곳에서 그리기 시작한 <루치아의 매장>의 전시로 보지 못한 채, 1608년 12월 6일, 성 루치아 축일 일주일 전에 시칠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메시나에 잠입하였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나 깨나 허리춤에 단검과 긴 칼을 차고 있었다.
인구 10만이었던 메시나는 로마처럼 큰 도시였다. 칼라브리아 해협을 통해 이탈리아 본토를 들어갈 수 있는 도시로 아프리카와 이탈리아, 동쪽과 서쪽을 이어주는 요지였다. 다행히 메시나와 몰타가 분쟁 중에 있어, 카라바조는 몰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메시나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의 명성은 자자했고, 자신을 성요한 기사로 소개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지오반 밥티스타 데 라짜리Giovan Battista de’ Lazzari
라는 한 부유한 상인을 만난다. 그와 그 가족들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자선단체인 파드리 크로치레Padri Crociferi가 관리하는 성당을 운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라바조에게 이 성당 제단 장식화를 그려달라는 의뢰하였다. 이 단체는 흑사병으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을 돌보는 수도승 단체였다.
그들은 원하는 성화는 분명했다. 성모 마리아, 성 요한과 다른 성인들이 등장하여 아이 예수의 탄생에 다룬 소위 ‘거룩한 대화’(Sacra Converzione)와 관련된 그림이였다. 카라바조가 이 따분한 그림들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그는 대신에 후원자의 이름인 ‘라짜리’와 연관된 <라사로의 부활>을 그리겠다고 역으로 제안하였다. 르네상스 시대, 후원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화가가 원하는 그림을 관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전에 유일한 예외가 미켈란젤로였다. 그는 교황 율리오 2세(1443-1513)이 바티칸 성당 천정화를 위해 제안한 12사도 그림을 거절하고 대신 <창세기>에 등장한 천지창조를 그렸다.
카라바조는 왜 <라사로의 부활>을 그렸을까? 의뢰자의 이름과 유사성이 유일한 이유인가? 라사로라는 이름은 고대 히브리어 엘아자르(אלעזר)에서 유래했다. ‘하느님이 도우셨다’라는 의미다. 카라바조는 신의 도움을 받아 성서에 등장하는 라사로처럼, 화가로서의 이전 명성을 부활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라사로에 관한 성화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초기 화가 조토와 두초는 라사로 성화를 비잔틴 시대 전통을 이어받아 그렸다. 그들은 라사로를 무덤에서 천으로 감긴 채로 걸어 나오는 부패한 시체로 그렸다. 카라바조는 불치의 병에서 죽었다 걸어 나오는 라사로를 이 성당에 가장 적합한 제단화라고 판단하였다.
빛과 어둠을 적절하여 배열하는 명암법이 카라바조의 그림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는 <라사로의 부활>에서 전혀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관람자들이 마음 속에 일어날 의미와 감정만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줄이고 덜어내고 소멸시켰다. 이 그림의 90%는 암흑이다. 왼편에 그림자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라사로가 매장된 무덤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오른 손을 들고 죽은 지 4일이나 지나 부패한 냄새가 나는 라사로를 깨운다. <요한복음> 11장 43절에 등장하는 순간을 그렸다: “라사로야, 이리로 밖으로!” 이 문장에는 동사가 없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리로’를 의미하는 ‘두로deuro’는 흔히 ‘오다’라는 동사로 번역하는데, 원래는 부사로 ‘이리고 지금’이란 의미이고 ‘밖으로’를 의미하는 ‘엑소ekso’는 ‘밖으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가 붕대에 감겨 부패하고 있는 사랑하는 라사로를 보고 너무 슬퍼 부사 두 단어만을 사용하여 외쳤다. 그리스도 주위에 제자들이 목을 빼고 조금 후에 일어날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그의 표정은 공포, 혐오, 그리고 놀라움에 휩쌓여 있다. 라사로의 몸을 앙상하고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했는지 녹색 곰팡이가 여기저기에 보인다.
그리스도의 뻗은 팔 밑에 두 무덤지기들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태양에 그을린 얼굴을 한 이들은 라사로를 덮은 무거운 무덤 뚜껑을 들면서 동시에 라사로를 부르는 그리스도를 놀라 바라본다. 또 다른 무덤지기는 관에서 지금 막 라사로를 꺼냈다. 그는 몸을 굽혀 왼손으로 그의 몸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그를 둘렀던 천으로 엉덩이를 살며시 들어 올린다.
라사로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스도의 뒤편에서 비추고 있는 광선이 라사로가 뻗은 오른 손에 안착하였다. 그의 오른 손은 이미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왼손은 무덤 안에서 희미한 빛을 반사하는 해골과 대퇴골쪽으로 손을 벌린 채 늘어져 있다. 왼손을 아직 죽음 속에 있다. 라사로는 그리스도의 외침을 듣는 순간,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라사로의 비유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전조로 해석되어왔다. 라사로가 무덤에서 부활한 것처럼, 그리스도도 십자가 처형으로 죽은 그리스도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인류를 원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카라바조는 두 이야기의 유사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라사로의 몸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강가降架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라사로 옆에는 그이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다. 마르다의 얼굴은 이제 막 살아날 라사로의 얼굴이 밀착되어있다.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마테르 돌로노사’Mater Dolorosa의 원형이다.
이렇게 밀착된 얼굴 그림은 오늘날 마케도니아 북부 고르노 네레찌에 있는 성 판데레미온 성당 프레스코에서도 찾을 수 있다. 12세기 비잔틴 시대 화가는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눈과 눈, 코와 코, 뺨과 뺨을 밀착하여 하나가 된 애통한 시점을 그렸다. (그림 2) 아마도 카라바조는 이 비잔틴 시대 성화 주제를 빌려 <라사로의 부활>에 적용했을 것이다.
라사로는 전통적으로 전염병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어로 전염병자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라자레토’Lazzaretto다. 카라바조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고향 밀라노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두눈으로 목격하였다. 그가 밀라노를 떠난 이유도 아버지가 흑사병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염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들을 극적으로 소생시키는 장면을 이 그림에 녹여 넣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1609년에 <라사로의 부활>을 통해 교황으로부터의 사면을 염원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로 잘 보이지 않는다. 로마 콘타렐리 채플 제단화를 위해 그린 <마태의 소명>에 등장하는 오른 손을 든 그리스도와 유사하다. 그리스도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카라바조 자신이 처한 운명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다. 카라바조는 라사로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오른 손을 그리스도의 구원을 원하지만, 왼 손은 아직 영원한 죽음 속에 있다. 라사로의 눈은 아직 감겨있고 그의 몸은 사후 경직으로 딱딱해져 있다. 그가 과연 구원을 받을 것인가? 운명이 정해지기 직전이다. 카라바조의 이전 그림처럼, 찬란한 광선이 어둠을 뚫고 등장하지 않는다. 이 그림은 구원이 얼마나 힘든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카라바조는 자신을 이 그림 안에 그려넣았다. 그리스도 앞에서 관을 향해 비추는 보이지 않는 빛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얼굴엔 자포자기의 기운이 스며있다. 그는 과연 죽음에서 살아날 것인가?
사진
<라사로의 부활>
유화, 1609, 380 x 275 cm
시칠리아 동북부 메시나 지역박물관 Museo Regionale, Mess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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