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21. (80th/365 金曜日) “일관된 이야기(디에게신διήγησιν)”(<누가복음> 공부를 시작하며: 2025.3.22. 토요일 10시-12시, 공개강좌)
- Chulhyun Bae
- 3월 22일
- 4분 분량
2025.3.21. (80th/365 金曜日) “일관된 이야기(디에게신διήγησιν)”
(<누가복음> 공부를 시작하며: 2025.3.22. 토요일 10시-12시, 공개강좌)
누가복음서에는 탕자의 비유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가 있어 좋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를 강조하였고,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사람의 아들 예수를 묘사했다면, 누가복음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아들로 예수를 묘사한다. 그는 예수는 우리 모두의 이상적인 인간으로 삼은 것이다. 그가 바울과 같이 예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바울을 통해 전해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기초로, 1세기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는지를 기록한다. 특히 초심자들 가운데, 사회의 약자들이 본 구원자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특히 남다른 의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 그 당시 창궐했던 다양한 병들과 증상들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1세기에 교보문고가 있었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권은 한 권의 하드 커버로 제본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흥미진진한 경험담을 담은 소설의 특징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당시 이방인 독자들은 바울의 난파선 이야기에 열광하고, 그의 다양한 설교를 읽으며 복음에 대해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에는 예수에 관한 다양한 문학적 형태가 포함되어있다. 독자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삶에서 “신을 경외하는 사람들”, 즉 이미 유대교의 일신교와 유대교의 윤리 기준을 확신한 이방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가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 여성, 사회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예수에 관한 복음은 테오필루스라는 인물에게 전한다. 누가복음 1:3; 사도행전 1:1에서 모두 테오필루스가 등장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초기 교회의 전통은 세 번째 복음서를 누가가 저술했다고 전한다. <무라토리아 정경> (180년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누가에 따르면 복음서의 세 번째 책은 의사가 된 누가가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 바울이 그를 여행 동반자로 데려갔고,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썼다.” 이보다 앞서 구약성서 폐기를 주장하여 이단으로 낙인찍힌 마르키온(135년경)도 누가를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로 인정했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누가가 복음서를 썼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는 바울의 "분리할 수 없는" 동반자였다고도 기록한다 (Adversus Haereses 3.14.1). 디모데후서 4:11을 바울의 진정한 주석으로 받아들이면, 누가만이 바울의 마지막 투옥 기간 동안 함께 있었다.
누가는 왜 사도행전을 기록했는가? 그는 로마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바울을 변호하기 위해 사도행전을 썼다는 주장이 있다.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 누가는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와 함께, 금지된 종교나 미신이 아니라, 로마제국 안에서 합법적인 종교(religio licita)로서 지위를 획득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예상했던 대로 즉시 돌아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당황했다. 파루시아Parousia라고 불리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교회는 새로운 실체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이스라엘의 일부로 간주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이 새로운 집단을 보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신약학자 F. C. 바우어가 속한 독일 튀빙겐 학파는 베드로의 정, 바울의 반을 융합하려는 합을 누가가 시도하였다. 누가는 철학자 헤겔의 정반합이라는 역사서술과 진화의 틀에서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누가는 예수를 직접 따라다닌 베드로와 이방선교에 헌신한 바울을 모두 수용하는 융합의 신학을 보여준다.
“당신이 자신의 삶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일관된 이야기(디에게신διήγησιν)는 무엇입니까?”
제 1 장: 서문: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헌사
1.
Ἐπειδήπερ πολλοὶ ἐπεχείρησαν ἀνατάξασθαι διήγησιν
περὶ τῶν πεπληροφορημένων ἐν ἡμῖν πραγμάτων,
אחרי אשר רבים הואילו לחבר ספור המעשים אשר נאמנו בשלמות בתוכנו׃
우리 가운데 성취된 것들에 관하여, 일관된 이야기를 차례대로 엮어내려고,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댓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해설)
누가복음은 복음서에서 한번밖에 등장하지 않는 ‘에페이데페르Ἐπειδήπερ’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 이 접속사는 투키디데스, 필로, 요세푸스와 같은 고전 저자들이 애용한 단어이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여기에만 등장한다. 5절에서 본격적으로 세례요한의 탄생을 기록하기 전에, 누가는 서문형식으로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을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전개할 작정이다. 그 이야기, 디에게신διήγησιν을, 이제 그리스-로마 철학과 문화에 익숙한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달할 작정이다. 누가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과 그의 부활에 관한 복음을 기술해왔다.
2.
καθὼς παρέδοσαν ἡμῖν οἱ ἀπ’ ἀρχῆς αὐτόπται καὶ ὑπηρέται γενόμενοι τοῦ λόγου
כאשר מסרום לנו הראים אתם בעיניהם מתחלה ואשר היו משרתי הדבר׃
그 말씀을 처음부터 직접 목격한 자와 그를 돕는 자들부터 우리에게 전해준 것처럼,
(해설)
누가는 예수의 언행을 처음부터 보고 들은 자들로부터, ‘전해들음’으로 자신이 쓴 복음서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유대전통에서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자가 없기 때문에, 태곳적으로부터 내려오는 말씀의 전승과정이 중요하다. 이 전통은 유대인들의 논어라고 알려진 <선조들의 어록>에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משֶׁה קִבֵּל תּוֹרָה מִסִּינַי, וּמְסָרָהּ לִיהוֹשֻׁעַ, וִיהוֹשֻׁעַ לִזְקֵנִים, וּזְקֵנִים
모세는 토라를 시내산으로부터 ‘받았고’ (qibbel),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전달하였다’(masar)
유대전통의 경전 전승방식인 ‘수용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그리스어로는 paralambano와 paradidomi로 번역하였다. 누가는 예수의 선교를 직접 본 제자들과 그를 돕는 사람들이 적은 복음을 누가를 포함한 ‘우리’들에게 주었다. (paradidomi)
*누가는 자신이 전해 받는 복음을 ‘로고스’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 1장 1절에도 다음과 같이 나온다:
Τὸν μὲν πρῶτον λόγον ἐποιησάμην περὶ πάντων, ὦ Θεόφιλε,
ὧν ἤρξατο ὁ Ἰησοῦς ποιεῖν τε καὶ διδάσκειν,
오, 데오빌로여, 제가 저술한 첫 번째 말씀(로고스)는
예수가 행동하고 가르치기 시작한 모든 것에 관한 것입니다.
로고스는 단순하게 ‘말’이 아니라, 예수의 행동이고 그가 자신의 삷을 통해 가르치려한 내용이다. 그 말씀은, 예수의 육신이며, 육신을 통해 이땅에서 행하신 모든 언행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1.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동등하게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다.
2. Οὗτος ἦν ἐν ἀρχῇ πρὸς τὸν Θεόν.
그는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3. πάντα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χωρὶς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οὐδὲ ἕν ὃ γέγονεν
모든 것은 그를 통해 생겨났다. 그없이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 ἐν αὐτῷ ζωὴ ἦν, καὶ ἡ ζωὴ ἦν τὸ φῶς τῶν ἀνθρώπων.
그에게 생명이 있었고,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었다.
로고스는 단순히 말씀이 아니라, 없음을 있음으로 만드는 가능성이자 힘이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로고스가 있었고, 로고스를 통해 만물이 생겨났다. 말은 곧 행위이고, 더 나아가 그 행위의 완성이다.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는, 말을 하면, 반듯이 행할 뿐만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완성해야만 하는 신의 명령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언행일치의 로고스에는 생명이 있어 사람들을 새롭게 부활하도록 만들고, 로고스는 빛을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관찰하고 응시하게 만든다.
3.
ἔδοξε κἀμοὶ παρηκολουθηκότι ἄνωθεν πᾶσιν
ἀκριβῶς καθεξῆς σοι γράψαι,
κράτιστε Θεόφιλε,
오,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저도 모든 것을 처음부터 정확하고 순서에 맞게, 전통에 의거하여 새롭게 (하늘이 주는 영감으로부터)
귀하께 기술하는 것이 제게도 좋아보였습니다.
(해설)
누가는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기술한 것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이전 저자들이 하늘의 영감을 받아 모두 새롭게 복음서를 작성한 것처럼, 자신도 모든 전해 들은 자료들을 신중하게 전후좌우를 고려하여 순서를 정해 새로운 복음서를 쓰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고 판한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보다는 누가 자신의 영감을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가 데오빌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를 지닌 데오빌로는 누가의 복음을 전해 듣는 독자의 가명일 것이다. 데오빌로는 ‘가장 존귀한’이란 호칭이 어울리는 당시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4.
ἵνα ἐπιγνῷς περὶ ὧν κατηχήθης λόγων τὴν ἀσφάλειαν.
למען תדע קשט האמרים אשר חנכת בם׃
그 결과 당신이 이미 배우신 일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완벽하게 알게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설)
테오필로 신자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누가가 글을 쓴 목적은 테오빌로에게 복음 전통의 “확실성”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완벽하게 안다’라는 의미를 지닌 ‘에피그노스코ἐπιγινώσκω’는 단순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완벽하게 숙달하고 그 핵심을 깨닫는 단계다.
사진
<누가와 성모 마리아> Saint Luke Drawing the Virgin
네덜란드 화가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Rogier van der Weyden(1400-1440)
유화-템페라, 137.5 x 110.8 cm
MFA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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