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20. (79th/365 木曜日) “겸손이 자만을 살해한다 humilitas occidit superbiam”
- Chulhyun Bae
- 3월 22일
- 5분 분량
2025.3.20. (79th/365 木曜日) “겸손이 자만을 살해한다 humilitas occidit superbiam”
누구는 겸손이 힘들다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생각하는대로 막말한다. 사람들은 그런 막말의 진위에 상관없이, 힘이 있는 자를 마음대로 폄훼하는 그들을 용기가 있는 자라고 부추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우리 사회는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엄청난 속도로 서로를 행해 달려오는 고속철과 같다. 다음 주면, 생각지도 못한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우리의 불행은 정치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교한 수사로 설득하고, 상대방의 주장이 옳다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훈련의 부재다. 초등학교부터 폭넓은 독서와 토론, 사색, 글쓰기를 해 본 적이 없는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은, 이 불행한 대결을 지속할 것이다. 교육과 종교의 왜곡과 부족이, 우리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 할 수밖에 없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실수하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한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자는 바보다.” ‘잘못 시인’은 위대함을 갈망하는 위대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절호의 기회다. ‘잘못 인정’은 탁월한 지도자의 방점이다. 자신의 실수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행위는 용서의 발판이다. 그러나 구차한 변명은 더 심한 벌을 유발시킬 뿐이다. 참회懺悔하는 한자에서 참懺은 원래 한자가 아니라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난 팔리어 ksama를 음역한 단어다.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잘못을 찾아내고, 그 실수를 저지는 자신을 스스로 꾸짖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참회다.
로마에 정착하여 승승장구하던 카라바조가 1606년 5월 28일,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이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오기에 보편적이며, 막을 수가 없기에 운명적이다. 카라바조는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살았다. 낮에는 로마의 성당과 귀족들의 궁궐에서, 신의 은총을 입은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의 대상이었지만, 밤에는 로마 뒷골목에서, 육신의 욕망과 폭력을 거침없이 분출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동물이었다.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에서 운명적인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당시 모든 로마 남성내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창녀 필리데 멜란드로니 (1581-1618)다. 시에나에서 태어난 멜란드로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로마로 이주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13세인 딸을 로마 뒷골목의 창녀로 만들었다. 카라바조는 뛰어난 미모를 지닌 멜란드로니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것은 마치 고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사랑에 빠진 것과 같은 강력한 운명이었다. 벳세바는 다윗의 부하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였고 후대에 솔로몬의 어머니가 된 인물이다. 카라바조는 그녀를 1590년 후반부부터, 다수 그림의 모델로 그렸다. <한 창녀의 초상화>, <성녀 까드린>, <마리아와 마르다>에서 마리아,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에서 유딧으로, 심지어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등장한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 않은 많은 카라바조에게 영감을 준 팜므파탈이었다.
멜란드로니의 포주는 라누키오 토마소니라는 불리는 귀족청년이었다.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운동으로 강화된 로마교구청 기록에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골치 덩어리였다. 로마 교구는 1599년 멜란드로니를 ‘코르티지아나 샨달로사cortigiana scandalosa’, 즉 ‘자주 말썽을 부리리는 창녀’로 낙인찍었다. 그녀는 모든 시민들이 참석할 수 있는 성례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녀는 토마소니가 선물해준 칼을 불법적으로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 멜란드로니는 1600년 후반에, 또 다른 창녀인 프루덴자 짜키아가 토마소니와 잠자리 사실을 알고, 칼을 휘둘러 그녀의 손목에 치명적인 상처를 낼 정도로 난폭했다.
멜란드로니를 사랑하는 두 남성, 즉 카라바조와 토마소니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다혈질 청년들이 1606년 5월 28일 결투를 벌였다. 이들의 결투는 6일 후에 오늘날 신문과 같은 소식지 팜플렛인 ‘아비시’Avvisi에 등장하였다. 멜란드로니의 고객인 카라바조는 토마소니에게 화대를 오랫동안 지불하지 않았다. 토마소니는 그런 카라바조를 동성애자라고 놀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싸움은 한 귀족의 궁궐에 마련된 테니스장에서 일어났다. 카라바조는 넘어진 토마소니의 성기를 자르기 위해 칼을 뽑았으나, 잘못 내리쳐, 허벅지 위쪽에 위치한 대퇴동맥을 끊었다. 이 광경을 보던 토마소니의 동생들은 그를 근처 병원으로 옮겼으나, 토마소니는 곧 과다출혈로 사망하였다. 카라바조도 이 결투로 심한 부상을 입고 1592년부터 거주하며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로마를 급히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귀족 친척들도 카라바조를 살인죄로부터 구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간의 목숨을 건 결투는 로마교회가 금지하는 불법행위였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살인행위는 중범죄였다. 로마 당국은 그의 머리에 ‘반도 카피탈레bando capitale’를 선언한다. ‘반도 카피탈레’는 교황관할 지역에서는 누구나 그 범인을 죽이면 현상금을 수여받을 수 있다는 법령이다. 만일 그가 시신을 가져오지 못한다 할지하도, 그의 잘려진 머리를 가져와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목숨을 두려워한 카라바조는 로마 관할권 밖에 있는 나폴리로 도망치면서 처절한 방랑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른, 그해 1606년 여름에 나폴리에 잠입하여,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미래를 헤쳐나 갈 방안을 모색한다. 자신의 참회를 알리는 그림을 그의 후원자이자 주교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제에게 기부하여 사면을 구걸할 작정이었다. 그는 이미 목이 잘려진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 참회의 장면을 성서에서 찾았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7장 48-51장에 등장하는 홍안의 청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51) 다윗이 달려가서,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라 죽였다.
카라바조는 이 이야기의 전개를 모두 생략하고 오직 51절에 집중하였다. 그는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잘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왼손으로 드는 장면을 창안하였다. 이 장면은 심리적으로 복잡한 그의 심경을 묘사하고 있다.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세 인물, 즉 다윗, 골리앗, 밧세바 이야기를 통해, 자신, 토마소니, 멜란드로니와 엮었다. 구약성서 이야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궁궐에서 훔쳐본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당시 이웃나라 암몬과의 전쟁터의 최전선에 배치하여 전사하게 만들고,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하였다. 동일한 방식으로 카라바조는 멜란드로니를 차지하기 위해, 토마소니를 살해하였다.
카라바조는 이 두 상황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다윗이 불레셋 장군 골리앗 살해하고 목을 잘라 왼손으로 들어 올리는 승리의 순간에도 기쁘지 않다. 골리앗의 잘린 목에서는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다윗의 얼굴에는 복잡한 자신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러진 얼굴의 반은 그림자에 잠겨있다. 그가 조약돌을 슬링에 넣고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시켰다는 사실을 그의 오른쪽 어깨에 느슨하게 풀린 겉옷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벨트는 마치 슬링과 같은 모습이다. 목이 잘린 골리앗은 아직도 극도의 아픔으로 비명을 지른다. 왼편으로부터 오는 빛이 울퉁불퉁하고 시커먼 아래 치아와 아래 입술을 비추고 있다.
미라가 잘려진 골리앗은 다름 아닌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이다. 토마소니를 살해하여 쫓기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 골리앗을 보는 다윗의 얼굴에는 안타까움, 연민, 사랑이 스며있다. 이 그림에서 다윗은 예수다. 다윗의 골리앗 살해는 종종 그리스도사 사탄을 정복하는 은유로 해석되어왔다. 다윗의 왼편에 든 칼날에 H.OC.S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4세기 아프리카 힙포의 주교이며 그리스도교 교리를 완성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시편> 33편 주석에 등장하는 문구에서 유래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윗이 골리앗을 정복했듯이, 사탄을 정복하는 자는 그리스도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라틴어로 humilitas occidit superbiam 즉 ‘겸손이 자만을 살해한다’라고 적었다. 카라바조는 이 라틴어 문구에서 단어의 첫 글자를 발췌하여 H.OC.S라고 새겨놓았다. 자신의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참회하고 있다는 울부짖음이다.
잘려진 골리앗의 머리가 된 카라바조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았다. 그의 오른 눈의 초점은 희미해지고 감기고 있지만 왼쪽 눈은 분노와 고통으로 훨훨타오르고 있다. 그는 단테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영혼처럼, 불길가운데 영원히 고통을 받고 있는 죄인과 같다. 그는 이 그림에서 다윗으로 등장하는 그리스도가 참회하고 있는 골리앗 모습을 한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타원하고 있다. 참회만이 용서와 사면을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어린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참회만이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도할 것이다.
사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06, 유화, 125 x 101cm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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