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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2.(月曜日)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Existence (2002) by Les Murray (1938-2019)

2024.9.2.(月曜日) “존재의 의미”

The Meaning Of Existence (2002) by Les Murray (1938-2019)

     

오랜만에 30분 떨어진 설악면에 있는 산책길을 찾았다. 지인 농부가 심은 벼들이 비를 머금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임무에 몰입하고 있었다. 낱알 하나하나에 간직된 생명들은 벼를 통해 완수해야할 신비를 지속적으로 완수하고 있었다. 지속은 생명약동의 표식이다. 출렁거리는 논밭에 거센 바람이 불어와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은 벼들을 눕혔다. 생명의 약동은 저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누운 벼들은 죽고 말 것이다.

     

호주 시인 무레이는 시골에 살면서, 식물과 자연의 힘을 몸으로 알아차렸고 그들의 소통한다. 그는 뉴 사우쓰 웨일스의 분야에서 빈곤한 낙농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떼를 몰았고 추운겨울에도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녔다. 그는 종종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똥에 들어가, 얼은 발을 녹였다. 아버지는 그를 구타하였고 학교에서는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독서를 사랑하여 상상하기를 즐겼다. 운좋게 장학금으로 시드니 대학에 입학 후에, 외국어 습득에 소질이 있어 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번역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61년 동료인 발레리 모렐리와 결혼하였다. 모델리는 그를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그는 종종 시집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to the glory of God을 위해 바쳤다.

     

그는 솔직담백하게 서민적이다. 그는 유럽과 미국식 현대문화를 혐모했다. 보통사람들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주의자와 지식인을 믿지 않았다. 그는 도시의 오염되고 매정한 삶이 아니라 시골의 단순한 삶을 선호했다. 그의 시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삶의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모세처럼, 덤불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소의 말을 경청한다. 자신이 집중한 대상의 이야기를 듣는 복화술(ventriloquism)를 통해 언어의 근본적인 기능을 의심한다. 인간이 언어를 창안했기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대로, 의미를 가지고 추구하는 동물인가? 무레이는 이 오만에 대해 <존재의 의미>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존재의 의미”The Meaning Of Existence (2002)

by Les Murray (1938-2019)

     

Everything except language

knows the meaning of existence.

Trees, planets, rivers, time

know nothing else. They express it

moment by moment as the universe.

언어를 제외한 모든 것은

존재의 의미를 알고 있다.

나무, 식물, 강, 시간은

그 외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존재의 의미를

매순간 우주로서 표현한다.

     

Even this fool of a body

lives it in part, and would

have full dignity within it

but for the ignorant freedom

of my talking mind.

심지어 이 몸뚱이를 가진 바보도

부분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산다. 그리고

그 안에 충만한 기품을 지니고 싶지만,

나의 떠드는 마음이 요구하는

무식한 자유를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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