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15. (木曜日) “탈출脫出하십시오!”
(<모세이야기> 2월 17일 줌수업 들어가는 글)
만물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굳건히 지키던 장소로부터 과감하게 나와야, 자신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 목적지가 있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오면 목적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발걸음 하나가 목적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떠남을 이주, 여행, 귀환, 귀근, 탈출, 죽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땅속 깊이 묻힌 씨앗은, 견고한 동토凍土를 뚫고 자신 되어야 할 꽃이나 나무가 되기 위해, 머리를 디밀어, 싹을 하늘 높이 틔워야 한다. 흙 밖으로 헤집고 나오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씨앗 안에는 우리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룩한 기운’인 ‘생명’이 만물을 그렇게 만들었다. <창세기>는 애석하게도 인간-중심적인 전근대적인 경전이라, 신은 인간에게만 ‘생명의 숨결’(히. 니슈마트 하임)을 진흙 덩어리에 마련한 두 개의 콧구멍에 불어넣었다고 기록했다. 그 흙덩이가 ‘살아 숨을 쉬는 존재’(네페쉬 하야)가 바로 인간이다.
이 감출 수 없는 약동하는 힘, 생명력이 바로 신이다. <창세기> 저자는 생명의 근원이, 인간의 포함한 만물과는 다른 존재인 신으로부터 왔다고 고백한다. 만물의 살아있음, 우리가 살아있다는 인식, 그 인식을 증명해주는 심장의 박동과 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들락거리는 호흡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인간뿐만 아니라, 내 곁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반려건 샤갈도 밤새도록 배를 움직이고 코를 통해 공기를 내보내고 동시에 들이마시고 있다. 누가 이 신비한 생명을 부여했는가?
‘나’라는 인간이 오래전에 부모의 결합을 통해 어머니의 뱃속에 안착되어 10개월이나 있었다. 점차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적인 특징들이 형성되었다. 그 안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공간이다. 만일 내가 탈출하지 않았다면, 나도 죽고, 나를 10개월동안 품은 어머니의 생명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수많은 정자들 중 하나의 유충이 어머니의 한 난자와 결합하여, 벌레와 같은 존재가 서서히 인간 모습을 갖춘 그 공간은, 그야말로 기적의 공간이다.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지방이다. 유대인들은 그 공간을 히브리어로 ‘레헴’rehem이라고 불렀다. 고대언어들이 다 그렇듯이, 레헴이란 단어에도 영적인 의미와 그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물질적인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레헴의 영적인 의미는 ‘자비慈悲’이고 물질적인 의미는 자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신체인 ‘자궁子宮’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나를 세상에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자기 몸의 가장 깊은 곳에, 비밀공간을 숨겨놓았다. 이곳은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담은 생명의 씨앗을 품고, 생명을 만드는 공간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신의 유전자가 바로 ‘자비慈悲’다.
자비는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온전하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아이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희생이며, 그 존재가 행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애지중지하면서도, 노심초사하는 마음이고, 그 존재가 해를 입지 않도록 불철주야 애쓰는 수고다. 생명에 대한 ‘자비’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영적인 유전자이며, 모든 문명과 문화의 뼈대다. 이것을 그리스도교는 사랑으로, 불교는 자비로, 유교는 인으로, 서양철학은 아레테로, 힌두교는 마이트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자비는 어머니가 자식을 보는 아련한 눈빛이며, 자신이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심장의 박동 소리다.
태아胎兒는 어머니의 뱃속이 좋다고 무작정 오래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나와야 한다. 어머니도, 그 아이를 무작정 뱃속에 담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점점 자라나, 자신의 배로 더 이상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뱃속은 가장 안정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공간이다. 무가 유가 되는 공간, 한 점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공간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 공간을 ‘코라chora’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우주라는 질서가 자리를 잡은 공간과 시간의 기원을 곰곰이 고민한 후에, 그 곳을 ‘코라’라고 불렀다. ‘코라’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시공간으로, 없음을 있음으로 개조하는 ‘제 3의 시공간’이다. 없음이 있음이 될수 있기에, 그 중간에 반드시 거야애하는 어머니 자궁과 같은 공간을 코라라고 말했다. 코라는 없음도 아니고 있음도 아닌 이상한 시공간이지만, 만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처야는 문지방門地枋이다.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 아니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이 탄생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비좁고 불편하고 축축한 공간이다. 코라는 신체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깨우치는 시공간이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깨우치기 위해서는, 오래된 자신을 살해 해야한다. 오래된 자신이란, 세상에 오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부모라는 문지방이다. 인간은 부모라는 문지방을 통해, 육체를 선물로 받았고, 부모가 마련해준 또 다른 공간인 학교를 통해, 선생으로부터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한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물과 거룩한 바람(성령으로 번역됨)’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천국의 삶을 지금-여기에서 누릴수 없다고 말한다. 제자들도 ‘다시 태어나야한다’라는 말은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하는 것으로 축자적으로 해석하였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에서, 둘 때 아들이 다시태어나기 위해 육체를 죽야하는 ‘머나먼 땅’이 바로 코라이며, 예수가 부활하기 위해, 죽어야하는 골고다 언덕이 또한 코라다. 인류 최초의 영웅 길가메시가 평온을 얻기 위해, 먼저 지하세계로 상복을 입고 떠나야했다. 그 먼 길(아카드어, ruqtam)이 바로 ‘코라’다. 이스라엘인들이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탈출해야할 이집트라 바로 코라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약한 몸을 감싸고 있는 막과 외부의 충격을 막기 위해 두텁게 형성된 알을 깨야 한다. 막은 가족과 친족의 진심 어린 ‘사랑’의 보호막이고, 알이란 ‘나’란 존재를 품격이 있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나도, 대체 가능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려는 사회의 음모다. <창세기> 12장에서 신은 아브람을 소명召命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막인 ‘가족과 친족’ 그리고 자신을 단단하고 보호하고 있는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한다. 이 떠남이 없다면, 그는 ‘아브라함’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무명씨로 죽었을 것이다. 이 소명에 복종했기 때문에, 그를 통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창세기>는 요셉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집트 파라오의 오른팔이 된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모두 이집트 고센지역(델타)으로 들어와 유목민으로 정착시켰다. 유목민들은 1년 내내 양떼들에게 먹일 목초지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데,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집트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지중해 지역 전체를 먹여 살리는 곡창지대다. 그들이 이곳에서 안주하기 시작하자,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도래한다. 그래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로 들어와 거주하는 이스라엘(야곱) 자손들을 부르는 두 가지 히브리어 용어가 있다. 하나는 ‘게르ger’이고 다른 하나는 ‘히브리’다. 이스라엘인들이 아직 자신들이 거주할 영토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두 용어로 불렸다. ‘게르’ger라는 히브리 용어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임시 노동자’라는 뜻이다. ‘게르’를 간단하게 번역하자면 ‘체류자滯留者’이고 영어로는 써전너‘sojourner다. 써전어의 어원은 ’-아래서‘란 의미를 지닌 sub와 ’하루‘를 의미하는 diurnus (<dies)의 합성어로 ‘하루살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루살이 벌레와 같이 고대 근동 최강국인 이집트에 눈치를 보며 살고 있었다.
또 다른 용어인 ‘히브리ibri’다. ‘히브리’는 ‘국경은 넘나드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후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사막으로 도망간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Pass-over란 절기를 만들었다. Pass-Over는,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고기와 양파를 먹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인 이집트를 탈출해야 한다. 아마도 대부분 이스라엘인들은 탈출하지 않고 그곳에서 안주하며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남은 자가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이 가나안 지역과 이집트지역에서 일으킨 혼란을 기록한 아카드어로 기록된 토판문서 382장이 있다. 아마르나 문서는 기원전 1404년-1340년, 파라오 아멘호텝 3세, 아크나텐, 투트 시대에 일어난 정치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기록하였다.
<출애굽기>는 탈출에 관한 이야기다. <출애굽기>는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개성을 지닌 인간으로 훈련을 받을 사막으로 가기 위해, 우리를 안전하게 감싸고 있는 가족이란 막을 걷어내고 사회라는 알을 깨야 하는 이유를 기록하였다. 이 수업은 우리 안에 내재한 ‘모세’라는 인물을 각자가 발견하고, 신이 누구인지는 묻고 깨닫는 훈련이 될 것이다.
사진
<십계명을 받는 모세>
마크샤갈
1956, 에칭, 28.4 x 2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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