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月曜日, 갑진년 첫날) ‘저자著者’
시간時間이 나에게 우주의 주인이란 사실을, 이 새해 아침에, 다시 한번 뼈져리게 통보해준다. 나는 아직 과거의 기억에 머물러, 불안하고 우울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기초로 희망을 품는 쳇바퀴 속 다람쥐같다. 그 우울을 떨쳐버리기 위해, 연인산 야산을 올랐다. 샤갈, 벨라, 예쁜이가 내 불안과 희망이 괜찮다고 위로하는 동반자다. 새해는 나에게 그 영원한 생각의 굴레에서 탈출하라고 소리친다. 우주는 시간이 낳은 자식이다. 시간이 생각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 우주라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질서를 지닌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힘이 중력이다.
시간은 정말 유수와 같다. 저 먼 산꼭대기에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온다. 이 물을 따라가면 동네 개울이 나오고 개울들이 합쳐져 시냇물과 강이 되어 저 도도한 북한강과 합류한다. 인간들은 그렇게 매정하고 야속한 시간을 아쉬워하며 허상을 만들어냈다. 과거, 현재, 미래다. 과거라는 구분이다. 과거 지나간 시간이고, 현재는 지금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이다. 흘러간 과거過去를 기초로 만들어낸 규율이 법法이고, 갑작스럽게 몰려와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시간을 멈춰 섬세하게 보려는 시도가 예술藝術이며, 경험하지도 못할 미래를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종교宗敎다.
시간이 이루어지는 모양을 시상時相이라고 부른다. 인간들은 자신의 행위를 표현하는 품사인 동사動詞를 과거, 현재, 미래이란 시간에, 그것이 한번 일어난 사건이냐, 지속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냐,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냐를 구분하여, 각각을 완료, 진행, 미완료란 이름을 붙인다.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오래된 언어들, 히타이트어, 산스크리트어, 아베스타어, 그리스어, 라틴어 동사는 9개 동사 시제를 지니고 있다. 반면 셈족어와 동양언어에는 시간중심이 아니라, 시상중심의 언어다. 예를들어, 고전히브리어 카타브kātab라는 동사는 ‘그가 썼다’라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그는 글을 써서 완료했다’, ‘그는 글을 과거에 쓰기 시작하여 좀전에 막 완료했다.’ 그리고 ‘그는 내일 이시간쯤에 글을 완료했을 것이다’라고도 해석된다.
나는 시상을 신봉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은 허상이며, 빅뱅을 통해 우주가 선물한 이 시간을 나의 의지로, 내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행위를, 완료하거나, 진행시키고 있거나, 혹은 미래의 한 시점에 완료되게 만들고 싶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원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기에, 이 순간을 시상의 힘으로 잡아야 한다. ‘카르페 디엠’이란 호라타우스 시인의 말처럼, 타인만 쳐다보다 흘러가 버린 시간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새벽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는 저 빛줄기를 낚아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다.
2024년은 우리 각자에게 자신만의 전설傳說을 쓰라고 허락한 거대한 도화지다. 나는 이 도화지에 나에게 감동적이며,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생명의 일원으로 지구에서 공생하고 있는 다른 생물에게 해가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도화지에 다른 사람이 와서 낙서落書하는 행위를 방치해서는 않된다. 대한민국처럼 관종주의와 가학주의로 점철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설을 쓰기란 여간 힘들다.
나는 내 소설의 저자著者다. 저자가 쓸 내용은 자신의 삶에 대한 관찰에서 올 수 밖에 없다. 내가 요즘 60여명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요셉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분들로부터 단상페이퍼를 4번 받았다. 그 주제는 파란만장, 시기, 구덩이, 섭리였다. 이제 5번째 주제인 ‘가식’에 관해 글 숙제를 부과하였다. 내가 놀란 것은, 20여분 모두 자신의 삶, 특히 마주하기 싫은 자신의 삶을 기억해내고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기억자체가 고통이고 그 기억을 글로 옮기는 것이 고역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 고통이 미소가 되고, 고역이 보람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쓰는 저자著者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려하냐, 장구하냐, 남들이 환호하냐가 아니다. 그 소설이 나의 정성이 들어가 나에게 감동적인가? 그래서 남들에게도, 자신만의 전설을 쓰라고 용기를 주는가? 2024년이 여러분 모두가 자신에게 감동적인 소설을 완수하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Happy New Year!
사진
<새해 아침, 연인산 중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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