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5. (水曜日: 植木日) “보잘 것 없는 사람”
지난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일본 작곡가가 있다. 사카모토 유이치(坂本龍一, 1952-2023)다. 그의 음악은 롱랑 죠페의 영화 <미션>(1986년)에 등장하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만큼 인상적이다. 눈이 펄펄 내는 저녁에 조용히 흐르는 그의 음악은 나의 영혼을 각성시킨다. 동양에도 이런 작곡자가 있었다니! 나는 사키모토를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영화 <레버넌트>(2015년)를 보면서 본격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주인공 디카프리오는 생존을 위해 극한의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다. 특히 그의 간절한 숨소리는 사카모토의 압도적인 첼로와 비올라 소리는 애간장을 녹인다. 시퍼런 죽음과 마주한 인간의 체념과 그 체념이 배태시킨 희미한 희망을 처량하고도 무심하게 노래한다.
사키모토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라는 인간은 혁명가도 아니고, 세계를 바꾼 것도 아니고 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닌,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겠다.” 누가 그를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조그만 사람은, 남에 대해 쑥떡거리고, 착한 사람은, 시대의 아픔을 가지고 씨름한다. 위대한 사람은, 거울을 보고 자신을 보며 한탄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혁신이 그가 속한 공동체의 혁신이란 사실이 유일한 진실이기때문이다. 소인배는, 타인의 잘못을 트집을 잡아 신문, 방송, SNS에 대고 떠들고, 소위 잘난 사람들은, 스스로 전문가인척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자신의 잠정적인 혜안을 우기며,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다. 그러나 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신이 주신 인생의 마지막 날로 여기에 종말론적으로 살며, 저녁에는 자신을 ‘자기-지신’이라는 법정에 올려놓고, 아침에 결심한 자신으로 살지 못한 자신을 아쉬워한다.
위대한 개인이 소수만 존재해도, 그 사회에 희망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5명이 없어 멸망했다. 의인이란 타인이 보기에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다. 자살률 1위, 이혼률 1위, 출산율 세계꼴지인 나라에 희망이 있는가? 된 사람은 없고, 소인배와 잘난사람들이 난장판을 치는 우리 사회에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는가? 신은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형상을 담은 양심을 선물로 주었다. 이 양심을 발견하려는 체계적인 자극이 교육이며, 그 양심의 발견이 깨달음이고 깨우침이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 ‘생명수업’을 진행하였다. 부천에서 온 태풍태권도장의 제자들, 민지, 나여, 수연, 한별, 정현, 그리고 서울에서 생명수업을 지원한 수민이와 상명이와 함께 영시를 공부했다. 상명이는 할머니와 일본을 방문하고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수업에 참여하였다. 나는 아이들과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I'm Nobody! Who are you?로 시작하는 288과 ‘희망은 날개달린 것입니다’“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로 시작한 314, 그리고 메리 올리버의 반려견에 관한 시 Little Dog’s Rhapsody in the Night를 공부하였다.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은둔자로 살면서 200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녀는 자신의 시에 제목 대신 숫자를 붙였다.
우리가 공부한 시들 중 에밀리 디킨슨의 288과 번역이다. 사카모토가 디킨슨의 시를 읽은 것 같다.
288
I'm Nobody! Who are you?
Are you - Nobody - too?
Then There's a pair of us?
Don't tell! they'd advertise - you know!
How dreary - to be - Somebody
How public - like a Fog -
To tell one's name - the livelong June -
To an admiring Bog!
저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도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잘 어울리는 짝입니까?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마세요. 그들이 광고할테니. 당신 알죠?
유명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직한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기나긴 유월, 자신의 이름을 탄복하는 늪에 대고 지껄이는 개구리처럼.
오늘 아침, 사범님이 아이들이 시에 대한 감상문을 문자로 보내왔다. 문자를 보면서, 가슴이 뿌듯하다. 아이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은 것 같아 기쁘다.
사진
<정현이와 나영이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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