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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金曜日) “잔치하는 인간”(Homo Festus)

2023.10.27.(金曜日) “잔치하는 인간”(Homo Festus)

나는 2007년에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2840516) 과학, 고고학, 인류학은 인간의 삶과 본성을 해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자료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최근 진화생물학자들의 저작을 보면,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로 등장한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호모 사피엔스>등과 같은 저작들은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적인 정보가 들어가 있는 유전자에서 찾거나, 인류 역사의 발전을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의도에서 전개되어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E.O. 윌슨은 The Social Conquet of Earth라는 책에서 자신과 자신에게 가까운 친족을 이익을 선택하는 ‘친족선택’kin selction을 반박하며, 종의 일원은 종 전체 집단을 위해,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그룹 선택’group selection을 주장하였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윌스의 주장을 친족선택 신봉자들은 진화생물학자 137명이, 윌슨의 주장을 격하였고, 특히 리차드 도킨스는 The descent of Edward Wilson, 즉 ‘에드워드 윌슨의 내리막길’이란 글에서 윌슨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들의 논쟁 일부는 아래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prospectmagazine.co.uk/ideas/technology/50176/the-descent-of-edward-wilson)

도킨스는 유전자라는 물질이, 그것을 지닌 생물의 행동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윌슨은, 물질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지할 수 없는 힘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종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일 수 있는가?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면,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올 것을 상정하는 호혜적 이타주의인가? 아니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비라는 영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났는가? 나는 그 당시 나름대로 동물이었던 인간이, 신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쓰고 싶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 두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오래전에 쓴 글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호모 페스투스’ 즉 ‘잔치하는 인간’이란 글이다.

인간은 홀로 지낼 수 없다. 아니 모든 동식물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응원해주는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는 자연의 주기에 마쳐, 특별한 모임을 만들어, 신에게 자연이 만든 동식물을 헌물하고, 그것을 다시 자신들이 나눠 먹었다. 매년 같은 날, 특히 춘분, 추분, 동지와 같이 급격하게 자연이 변화하는 절기에 진행되는 행위가 의례다. 우리는 이 종교적인 의례를 세속적으로 잔치라고 부른다.

1. 물질혁명 vs. 정신혁명

인류는 언제부터 공동체 일원들, 즉 직계가족과 친족을 넘어서 마을을 이루는 동네 사람들과 잔치를 시작했을까? 우리는 최근까지 농업의 발명이 도시, 문자, 예술, 그리고 종교를 탄생시킨 기반이라고 믿어왔다. 물질을 통해, 먹고살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만 고차원적인 문화와 문명을 탄생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남녀의 유전자 결합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생명이 탄생하지 않는다. 남녀가 서로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끌림, 그 보이지 않는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유물론자들은, 물질이 정신과 영혼을 만드는 태반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정신이나 영혼이 물질을 이끌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유물론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은 최근 기원전 9500년에 건축되었다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터키 궤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에서 신전의 발굴로, 자신들의 입장을 재고하거나 선회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물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하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타고난 동물이며, 인간이 타인에게 배푸는 행위는, 기껏해야 ‘호혜적인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이다. 이 주장은 현대인들의 마음에 굳건히 자리 잡은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이다.

궤베클리 테페 발굴은 지금까지 인류 문화와 문명사의 ‘진리’로 여겨졌던 가정을 수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것은 마치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이 지동설의 발견으로, 우주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세계관을 수정해야만 하는 당황스러운 진리다. 궤베클리 테베 신전 건축시기에 인류는 아직 농업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술과 문화의 상징인 그릇조차 만들 능력이 없었다. 고고학자들은 조심스럽게, 인류문명에 대한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하기 시작하였다. 궤베클리 테페에 사냥-채집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거주지로부터 떠나 일정한 기간에 이곳에 순례巡禮를 와, 정교한 의례와 잔치를 벌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의례를 지내고 잔치를 벌이면서, 자연히 정보를 교환하였고, ‘농업’이라는 새로운 생존방식을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다. 종교축제가 농업이란 개념을 상상하는 기반이 되고, 농업은 다시 도시와 문자라는 문명을 탄생시켰다.

궤베클리 테베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원형을 그리며 서 있는 유적지다. 그것은 외견상으로는 영국에서 발견된 스톤헨지와 비슷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첫째, 궤베클리 테페는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건축 시기와 비교하여 동시대가 아니다. 거의 칠천년이나 앞선 거석문화다. 둘째, 궤베클리 테페에 사용된 돌들은 자연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석회암의 표면을 부드럽고 평평하게 직사면체이며, 그 위해 수많은 동물들, 즉 야생 사슴, 뱀, 여우, 전갈, 그리고 야생 멧돼지를 반부조물로 새겨놓았다.

인류는 기원전 9500년경, 가족 혹은 친족단위를 중심으로 소규모로 모여 살았다. 그들은 먹을 식물들을 채집하거나 야생동물들을 사냥하며 생존했다. 그런데, 궤베클리 테페는 사방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인위적’으로 만든 신전이다. 당시 인류는 무게가 16톤이나 되는 돌을 바퀴나 동물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인력을 동원하여 이 높은 곳까지 옮겼다. 이들은 이 높은 곳에 특별한 건물, 일상과는 구분되는 신전을 건축하였고,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다. 이들은 아직 문자, 금속 혹은 도자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인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이곳에 도착하면, 커다란 돌기둥이 거대한 거인처럼 그들을 압도하고, 그 위에 그려진 동물들을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횃불에 의해 빛나, 영적인 세계에서 온 전령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떤 고고학자는 궤베클리 테페의 건축을, 스위스 칼을 가지고 달나라에 갈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과 비유할 정도로,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2. 고든 비어 차일드 vs 클라우스 슈미트

고고학자들은 아직도 궤베클리 테베를 발굴하고 있고, 그 기능이 무엇이지 가름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장소는 인간과 인간의 문명을 이해하는 기본 틀을 흔들어 놓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을 설명하고 있다. 20년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고고학자들은 호주출신 영국 고고학자 고든 비어 차일드Godon Vere Child가 주장한 ‘신석기혁명’의 이론을 수용하였다. 이 이론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호모 사피엔스는 농업이라는 기술을 발명하여, 자신들의 과거 사냥-채집생활을 멈추고 한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상호간의 소통과 통치를 위해 신전과 계급제도를 만들고, 신전중심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문자를 발명하였다. 농업혁명은 오늘날 이락 남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어떤 한 곳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건으로, 그 후에 인디아,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차일드의 주장은 학자들에게 수용되었다. 농업은 빙하기가 끝나 기후가 좋아져, 사람들이 처음으로 식물을 지배하고 동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진리’로 여겨졌던 ‘농엽혁명’과 그 가정들은 궤베클리 테페의 발굴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과학에선 ‘정설’이나 ‘진리’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지식과 혜안으로 대치될 잠정적인 과정일 뿐이다. 더 정교한 이론이 등장하면, 이전에 정설도 수용된 것들은 거짓으로 전락한다. 고고학자들은 최근 이 이론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농업의 등장은 혁명이 아니다. 농업은 여러 곳에서 수천년에 거쳐 자연스럽게 등장한 문화이며, 농업이 등장한 이유는 환경과 같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발견이다.

궤베클리 테페는 인류가 아직 농업을 발견하기 전에, 모든 것을 동원해 건축한 최초의 순례지다. 후대 등장한 위대한 종교들은 신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한 순례지가 있다. 예루살렘, 메카, 바티칸,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다가야가 대표적이다. 이 순례자들은 신앙의 수련을 위해 자신의 일상 거주지를 떠나, 먼 길을 걸어온다. 순례지엔 순례자들을 영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특별한 물건이나 구조물들로 가득 차 있다. 궤베클리 테베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최초의 순례지다. 빙하기 시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하 동굴을 내려가 벽화그리기, 노래하기, 춤추기와 같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의례를 행했다. 빙하기 시대가 끝난 후, 인류는 지하가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일상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구조물을 지었다. 인류는 처음으로 이 곳 궤베클리 테페에서 자신을 초월하는 세계를 희구하고 압도적인 건물을 지음으로 새로운 틀의 문화를 찾고 있었다. 이들의 하늘의 숭고함에 도전하는 웅장한 구조물에 대한 집착과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한 묵상, 그리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찰이 인간에게 문명을 선물하였다.

클라우스 슈미트Klaus Schmidt란 고고학자는 1994년에 궤베를리 테베 근처에 있는 샨리우르파Şanlıurfa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샨리우르파는 고대근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에 하나로, 유일신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태어난 장소다. 슈미트는 샨리우르파 북쪽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원류가 있는 산맥과 연결된 평원에서 신기한 지형 하나를 목격하였다. 샨리우르파에서 14km 떨어진 평원에 갑자기 우뚝 선 언덕이 등장한다. 지역주민들은 이 장소를 다소 우스꽝스런 용어를 사용하여 ‘배불뚝이’의미를 지닌 ‘궤베클리 테베’라고 불렀다. 1960년대 이곳을 발굴한 미국 시카고대학 고고학자들은 궤베클리 테베를 비잔틴 시대 군사기지로 오판하였다. 슈미트는 1995년부터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훨씬 이전 인류문명의 기원을 밝혀줄 유물로 판단하고 독일 고고학 연구소와 샨리우르파 박물관 팀과 함께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그는 현재까지 이곳에서 원형으로 정교하게 배열된 돌기둥들을 단지를 20개나 발견하였다.

궤베클리 테베 건축자들은 자신들이 정성스럽게 건축한 원형 돌기둥을 시간이 지나면 흙, 도자기, 그리고 희생제사지낸 동물 뼈들로 매장하고, 그 위에 다시 원형 돌기둥들을 세웠다. 그래서 이곳은 점점 높이 쌓이게 되어, 마치 그 모양이 ‘배불뚝이’처럼 되었다. 또 다른 특징은 궤베클리 테베의 건축기술이 후대로 가면 갈수록 후퇴한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땅속 깊이 매장된 원형 돌기둥이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월등히 뛰어나다. 이 기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작어지고, 단순해지고, 무엇보다도 섬세하지 않다. 궤베클리 테베는 기원전 8200년, 의도적으로 버려졌다. 그 후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아무도 찾지 않았다. 슈미트는 신전이 먼저 있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농업과 도시가 등장했다고 주장하였다. 궤베클리 테페는 어떤 장소였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이곳에 거주하지 않고 떠났을까?

3. 돌기둥 동물 부조 상징과 의례

궤베클리 테페의 건축물은 커다란 원형 구조물 안에 사각형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사각형 구조물 안에 가장 큰 T모형 기둥 두개가 마주보고 있다. 궤베클리 테베 건축물들의 특징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이 돌기둥에 반부조로 새겨진 동물들의 표현 때문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굴한 A, B, C, D 지역 돌기둥에서 포유류 동물들을 38,704개나 확인하였다. 그들 중 가장 많이 표현된 포유류는 야생사슴 (7949번), 야생 황소(2574번), 야생 당나귀(1177번), 여우 (971번), 야생 양(944번), 야생 돼지(865번) 순이다. 특히 원형 돌기둥 중앙에 위치하여 마주보고 있는 T모양 기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뱀(23번), 여우(12번), 야생 돼지(7번), 학(5번) 그리고 야생 황소 이다. 그 뿐만 아니라, 독수리, 까마귀, 아구창과 같은 다양한 조류들은 포유류만큼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골고루 분포되어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궤베클리 테페 돌기둥에 새겨놓았을까? 샨리우르파로부터 14km나 떨어진 높은 언덕에 건축한 이 건물은 오늘날 바티칸, 예루살렘 혹은 메카처럼, 잔치를 곁들인 의례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이제 막 선토기(先土器)신석기시대(PPN, Pre-pottery Neolithic)로 진입하면서 돌기둥들을 세워 높고, 그 위에 다양한 동물상징을 새겼다. 이 돌기둥들은 후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등장하는 쿠두루kudurru라는 경계석과 기능이 유사하다. ‘쿠두루’는 기원전 2000년부터 바빌로니아 왕들이 자신들이 치리하는 도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상징물로, 쿠두루에 온갖 무섭고 사나운 동물들을 새겨놓았다. 쿠두루는 질서와 혼돈,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경계석이다. 바빌로니아의 쿠두루가 문명이 시작된 이후, 야만과 문명을 구별하는 지형적인 표식이라면, 궤베클리 테페 돌기둥은 문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 문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기반들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자궁이다. 인류는 궤베클리 테페를 통해, 도자기, 농업, 동물 사육 등을 창조하여, 후에 등장할 문명의 두 요소인 문자와 도시를 탄생시켰다.

궤베클리 테베의 D 지역은 가장 오래되고 크고 잘 보존되어있다. 정 가운데 두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마주보고 서있고, 그 둘레 담에 12개 기둥에 세워져 있다. 이 곳에 주로 묘사된 동물은 여우와 뱀이다. T 모형 기둥은 높이 5.5m나 되고, 사람의 손과 손가락이 돌기둥 옆으로 새겨져있다. 그 손 밑에는 벨트와 허리감개가 둘러져있다. 이 원형돌기둥들의 중심인 T모형 기둥들은 인간의 모양을 흉내 낸 의인화된 기둥이다. 그러므로 이 기둥 표면에 새겨진 동물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초들이다. 그러므로 뱀, 야생 돼지, 야생 황소, 그 밖에 사나운 육식동물들은 잠정적으로 무서운 동물들이다. 이들은 궤베클리 테페의 거석 예술에서 이제 막 정착생활을 시작하려는 인간을 보호하는 동물들이다. 만일 이 동물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원형돌기둥들을 보호한다.

사냥-채집으로 연명하던 인류가 굳이 이곳에 원형돌기둥들을 세워놓고 동물을 새겨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사냥하거나, 경쟁해야하는 동물들이다. 우리는 이 동물들을 기원전 삼만천년부터 기원전 만년까지 유럽의 지하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벽화와 비교하면, 그 심층적인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빙하시대 인류에게 동물을 사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의례행위의 중심이었다.

언덕, 산, 혹은 높은 곳에 위치한 성소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 후대 문명에 등장하는 피라미드, 지구라트, 오벨리스크, 바벨탑 등이 그 예들이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 돌기둥들의 동물 상징은 토테미즘이다. 스코틀랜드 인류학자 앤드류 랑Andrew Lang은 20세기 초에 초기 인류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동물들을 선택하여, 자신들을 다른 그룹들과 구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각각 사회공동체는 자신들이 선택한 동물이나 식물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배타적인 상징물로 사용하였다. 토템상징은 다른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각인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장소에 등장한다. 돌기둥들이나 토템 기둥으로 표시된 경내는 한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성인식을 거행하는 장소다. 궤베클리 테페의 돌기둥들의 토템들은 하늘, 땅 그리고 지하세계의 강력한 동물들로, 한 공동체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었다.

4. 순례와 잔치

인류의 최고 공동체는 음식을 함께 먹고, 지난 일들을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식구食口다. 식구는 한 지붕 아래서 먹을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인류는 기원전 구천오백년 아직 사냥과 채집을 기본적인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인류는 ‘식구’라는 최고 공동체를 확장하여 ‘친족 공동체’로 확장하였다. 공동체가 점점 커지면서 구성원들 간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그에 비례하여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궤베클리 테베는 사냥-채집을 일삼던 ‘이동하는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조직적으로 키우는 ‘정착하는 인간’으로 전이하는 과정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이 둘 사이에 반半-정착적인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 공동체는 특정한 장소를 정해, 정해진 시간에 함께 보여 일정기간동안 함께 지내기를 연습한다.

서양서는 그런 모임을 ‘페스티발’festival이라고 부른다. 페스티발은 라틴어에서 빌려온 차용어다. 라틴어 페스타festa는 “축제; 잔치”라는 의미다. 서양 언어들에서 ‘축제’에 관련된 용어들은 모두 이 단어에서 파생했다. 예들 들어, 프랑스어 fête, 스페인어 fiesta, 영어 feast가 그렇다. ‘페스타’란 단어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오래된 관습을 담고 있다. ‘페스타’라는 단어의 어원은 궁극적으로 프로토-인도유럽어 *dhes-no로 거슬러 올라간다. *dhes-no는 “우주의 질서에 맞게 만물을 배치하는 의례”라는 의미다. 그런 의례를 하는 시간을 ‘절기; 축제일’이며, 그런 의례를 하는 장소를 ‘신전’, 그런 의례와 관련된 일련의 활동을 ‘잔치’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일 년에 한번 라마단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 의례를 행한다. 전 세계에서 거의 300만명이상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찾아 종교축제를 거행한다. 이들은 오히려 금식을 통해 음식의 중요성을 묵상한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들었던 유월절을 기념하여 함께 공동식사를 한다. 유일신 종교들의 축제보다 더 오래된 잔치가 있다.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선사하는 자연과 신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추석’이라고 부른다. 먼 친척까지 함께 보여 음식을 나눔으로 상호간의 신뢰와 우정들 다진다. 순례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살펴보며, 더 큰 공동체 형성을 위해 진지하게 대화라는 자기수련과정이다.

5. 희생제물와 술

의례에 필요한 두 가지 음식이 있다. 하나는 ‘고기’이고 다른 하나는 ‘술’이다. 고대 근동지방의 희생제사의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구약성서 ‘창세기’ 15장에 등장한다. 유일신 종교의 조상 아브라함이 신과 최초로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신은 아브람(아직 아브라함이라고 개명하지 않았음)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를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아브람은 비둘기를 제외한 다른 희생 제물들을 둘로 쪼겠다. 그러자 한 밤중에 갑자기 횃불이 나타나,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성서는 그런 후, 이 희생제물의 처리에 관해 침묵한다. 대개의 경우, 이런 의례에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먹으며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이렇게 희생제사를 위해 ‘정결하게 잘려진 음식’을 히브리어로 ‘베리쓰’berith라고 부른다. ‘베리쓰’는 계약契約이란 의미도 함께 지닌다. 함께 음식을 나눈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 운명체가 되며, 만일 공동체가 결의한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반으로 잘려진 희생제물과 같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선포이기도 하다.

고고학자들은 궤베클리 테페에서 십 만개 이상의 야생동물 뼈들을 발견했다. 이 뼈들은 야생 멧돼지, 사슴, 양, 그리고 다양한 새들 것이다. 궤베클리 테페는 주변에 거주하던 사냥-채집인들을 일정한 기간에 불러 모았다. 이들은 일 년에 두 번씩 공동체 별로 동물을 가져와 이곳에서 희생 제사를 올렸다. 두루미는 대표적인 철새로 일 년에 두 번 이곳을 지나간다. 3-4월에 알을 낳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하고, 9-10월에 겨울을 나기위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 두기간은 춘분과 추분에 해당한다. 3-4월은 만물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간이며, 9-10월 지난 일 년동안 생존을 감사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철새들은 시간과 자연의 변화를 알린다.

희생제사에 필요한 또 다른 음식은 ‘술’이다. 인간은 술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인위적으로 황홀경에 빠진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술은 야만을 문명으로 이끄는 중요한 상징이다. 이 서사시의 처음에 등장하는 엔키두는 동물과 함께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야만적인 인간이다. 엔키두를 도시의 상징인 우룩으로 인도하는 여인은 창녀 샴하트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맥주를 건내 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맥주는 나라를 지탱하는 생명입니다.” 아카드어 원문을 쓰자면 ‘시카룸 나피슈툼 샤 마팀’(shikarum napishtum sha matin)이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결코 문명인이 될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오래전에 이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술이 나라를 지탱하고 구성하는 생명이라니!

최근까지 맥주와 포도주은 수메르와 이집트 문명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술의 발견이 훨씬 이전이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등장하시 시작하였다. 고고학적 증거로 술을 제조했다는 증거는 다음 두 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곡물을 발아시켜 건조하는 소위 ‘몰팅 바닥’의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도자기나 석기 그릇의 바닥에 남아있는 유기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학자들은 궤베클리 테페 건물들 중 ‘부엌’으로 추정되는 건물에서 다섯 개 커다란 석회암 그릇들을 발견하였다. 고고학자들은 그 그릇 바닥에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보리와 밀을 발효시킬 때 생기는 화학물질인 옥살산염oxalate을 추출하였다. 이들의 맥주를 제조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서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은 맥주 제조에 필요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 인류가 아직 농업도 시작하지 않았고, 도시도 건설하지 않았지만, 맥주를 제조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궤베클리 테베에서 거행된 의례에서 사용하였다. 이곳에 찾아온 순례자들은 맥주를 마시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흥겹게 확인했을 것이다. 나는 궤베클리 테베의 증거를 통해,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창녀 샴하트가 엔키두에게 건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궤베클리 테베는 인류 최초의 순례지였다. 유럽전체가 두꺼운 빙하로 덮여 있었을 때, 소수의 호모 사피엔스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와 회화, 조각, 음악과 같은 예술을 발견하였다. 기원전 만년경, 빙하시대가 끝나자, 인류는 사냥뿐만 아니라 채집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남하하였다. 그곳이 바로 궤베클리 테베는 오늘날 터키, 시리아, 그리고 이락의 중간 지점으로 후에 등장할 문명의 정신적인 모체가 되었다.

6. 토템 기둥과 해

고고학자들은 2009년 발굴 기간에, 석회암으로 만든 동물 조각의 머리 부분을 궤베클리 테페의 남동쪽 언덕에서 발견하였다. 그들은 그 장소를 깊이 파내려가, 길이 1.92m, 지름 30cm, 그리고 무게 500kg정도 토템 기둥을 발굴하였다. 이 기둥은 세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가장 윗부분은 사자 혹은 표범을 조각하였다. 이 동물의 귀와 눈은 아직 남아있지만. 얼굴 부분은 오래 전에 지워졌다. 머리 부분 밑에 짧은 목과 양 팔과 손이 보인다. 이 모양은 남서 독일 홀레스타인에서 발견된 ‘사자인간’상과 아주 흡사하다. ‘사지인간’ 상은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인간은 전형적인 반인반수의 괴물이다.

두 팔은 가슴 앞에서 어떤 것을 들고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고고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토템 기둥과 비교하여, 두 팔로 들고 있었던 것은 ‘해골’이라고 유추하였다. 아마도,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자신의 머리일 가능성이 크다. 이 모습은 궤베클리 테페의 가장 중요한 기둥인 T모형 돌기둥 부조와 형태가 같다. 두 팔과 두 손 밑으로 두 번째 사람이 보인다. 두 번째 사람의 얼굴은 윗사람보다는 작다. 이 두 번째 사람의 두 팔과 손이 보인다. 그 밑에 또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사람보다 작다. 얼굴과 두 팔과 손이 보이며, 마치 출산하는 모습이다. ‘사자인간’ 팔 밑에는 커다란 뱀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뱀의 큰 머리가 세 번째 사람의 머리위에 있다.

이 토템은 왜 해골을 들고 있는 것인가? 해골은 조상숭배와 죽은 자로부터 산자를 보호하는 신앙까지 다양한 이유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해골 숭배는 기원전 9600년에서 기원전 7000년까지 궤베클리 테페가 속한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과 레반트(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궤베클리 테페에는 매장 흔적이 없지만, 수많은 인간 유골가운데, 후두개골이 종종 발견된다.

7. 잔치하는 인간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를, 공동체 형성을 위해 중요한 문지방으로 변화시켰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기원전 만년경 빙하기가 끝나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북반구에서 남하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터키, 시리아, 이락,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에 반정착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확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궤베클리 테페에 인류 최초의 신전을 지었다. 그들은 일 년에 두 번, 이곳에서 희생제사를 지내기 위해 순례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질 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쌓는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은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들은 맥주를 함께 마시며,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기를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궤베클리 테베는 대규모 잔치를 곁들인 의례를 행하던 구석시 시대 메카다. 그들은 정교한 원형돌기둥들을 세워 그 안에 들어가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이 ‘우니오 미스티카’unio mystica 즉 ‘신비한 하나’를 경험하였다.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동안, 자신들이 관찰 했던 야생 보리와 밀을 재배 가능성을 논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족단위가 아니라, 더 규모가 큰 집단을 상상하며, 지도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소위 ‘평등사회’에서 ‘초평등사회’로 진입하였다. 인류는 궤베클리 테페로 자신이 신과 공동체를 위해 제사할 제물을 가지고 수십키로 혹은 수백키로를 걸어왔다. 이들은 중동의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삶과 죽음, 자신과 공동체를 깊이 묵상하였다. 인류는 이제 떠돌이가 아니라 정착하여 문화와 문명의 씨앗을 뿌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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