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023.1.3. (火曜日, 3/365) “호모 루덴스HOMO LUDENS”

2023.1.3. (火曜日, 3/365)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아침에 일어나 하얀 방석 위에 몸을 올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가장 먼저 오늘은 무엇을 하지 말까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금기를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반려견 중 가장 큰 샤갈이 앞발로 나를 툭툭 친다. 그리고 말한다. “졸고 있어요? 산책할 시간이에요. 어서!”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등산 의례를 준비한다. 이 의례는 다른 의례와 마찬가지로, 마음가짐만큼 의복이 중요하다. 신은 따분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내쫓으면서, 가죽으로 몸을 가리는 옷을 만들어준다. 신은 재단사裁斷師다.

운동이나 의례나 가장 중요한 준비는 의복이다. 등산화, 장갑, 그리고 유니클로 경량패딩은 겨울 산행의 핵심이다. 특히 모자 달린 패딩 위에 또 다른 패딩을 입으면 겨울바람이 여간해서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툼한 장갑을 끼고, 목토시와 털모자 그리고 고글 색안경을 장착한다. 고글을 고집하는 이유는 비탈길을 반려견들과 빠르게 내려올 때, 자칫 잘못하면 나뭇가지에 걸려 눈을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등산화를 착용하기 시작하면, 샤갈, 벨라 그리고 예쁜이가 준비운동을 한다. 눈이 소복하던 덮인 마당에서, 이러 저리 신나게 뛰어다닌다. 산행을 위한 준비운동이다.

샤갈과 벨라는 10살 진돗개다. 샤갈은 몸이 남다르게 커 몸무게가 38kg이고 벨라는 전형적인 진돗개로 19kg다. 그리고 예쁜이는 시바 믹스견으로 18kg이다. 아내가 6년 전 설악면 시내에서 처참한 상태로 우연히 발견하여 가족이 되었다. 샤갈과 벨라가 예쁜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는 대하소설이다. 언젠가 쓰고 싶다. 벨라와 예쁜이가 요즘은 싸우지 않고 잘 논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아도 논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동시에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이들의 노는 모습에는 규칙이 있다. 그런 놀이는, 인간을 포함한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원칙이자 삶을 연장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놀이의 중요성을 현대인들에게 알려준 사람은, 놀랍게도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다. 그는 나에게 중세와 르네상스를 볼 수 있는 시선을 주었다. 에라스무스Erasmus, 유화를 발견한 반 에이크Van Eyck, 피터 브뤼겔, 그리고 중세문화에 관한 책인 <중세의 가을>은 어떤 역사가도 제공하지 못한 혜안을 주었다.

그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호모 루덴스: 문화에 있어서 놀이 요소에 관한 연구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라는 책을 출간한다.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했다. ‘놀이라는 인간’은 ‘노는 인간’과 뉘앙스가 다르다. ‘놀이’에는 참가자들이 정한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을 어겼을 때는 반칙으로 퇴장이거나,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적당한 제재를 당한다. 그러나 ‘노는 인간’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특별한 일이나 직업이 없이 빈둥빈둥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일 만큼, 어리석기 때문에,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정의이며 학술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eins’는 순진한 낙관론에 근거한 만큼, 폐기되거나 대치되어야 한다. 혹은 도구를 만드는 유인원이란 의미를 지닌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 다른 동물들도 정교한 도구 사용하여 자신의 거처를 만들기 때문에, 인간만의 특징을 드러내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그가 선택한 용어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루덴스는 라틴어로 ‘놀다’라는 의미의 동사 ‘루데레’lūdere의 현재분사형으로 영어로 번역하자면 Playing Human 혹은 Human, Player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사는 로마가 이탈리아에 거주하기 전, 이탈리아 서부에 거주하던 원주민 에트루리아 어근 *leyd-에서 유래했다. 에트루리아 유적을 보면 유난히 후에 그리스 올림픽 경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경기들이 묘사된 벽화들이 많다. 호이징어는 자신의 책 제목을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of Culture가 되기를 바랬다. 문화에서 한 부분으로의 놀이 요소(the Play-Element in Culture)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이며, 더 나아가 생명을 지닌 존재는 모두 ‘놀이’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는 놀이는 이 책에서는 문화의 핵심 개념으로 놀이를 설명했지만, 누군가 후에 생명 자체를 놀이로 설명하는 책이 나올 것이다.

놀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구축한 문화나 문명보다 장구하다. 며칠 전에 본 TV프로그램 <단짝>에서 마야라는 보더콜리의 네 마리 새끼는 어미가 하는 움직임을 보고 배우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이 장면은, 심지어 10년 전, 1달밖에 되지 않는 진돗개 벨라의 행동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벨라는 진도에서 분양받고 키우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외출하면서 응접실 문을 살짝 열어놓고 용변을 마당에서 하라고 말과 눈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벨라는 응접실 문을 통과하여 자기 키보다 놓은 계단을 내려가 마당에 볼일을 보았다. 우리와 약속한 내용을 인지하고 행동에 옮겼다. 벨라는 그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명령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를 구축하려는 놀이로 여긴 것이다.

세 마리 반려견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숭고하다. 이들은 서로 놀자고 앞발과 가슴을 땅에 대고 몸을 흔들면, 동료들이 따라 하다 집 주위를 마구 뛰어다닌다. 그 엎드리는 자세가, 놀이를 시작하자는 표시이며 의례다. 이들이 화가 나 앞발을 세우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결코 치명적으로 상처나 남을 수 있는 귀와 같은 신체를 물어뜯지 않는다. 이들은 놀이를 통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한없이 행복을 즐기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 Shining에서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일 만하고 놀지 않는 잭은 지루한 소년이다”라는 의미다. 영화의 주인공 잭(잭 니콜슨)은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잭이 연극 대본을 쓰려고 타자기 앞에 앉은 남편이 이 문장을 수백장에 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 문장은 원래 제임스 호웰James Howell의 격언들 (1659년)이란 책이 이렇게 등장한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All play and no work makes Jack a mere toy.

일 만하고 놀지 않는 잭은 지루한 소년이다.

놀기만하고 일하지 않는 잭은 장남감일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놀이처럼 즐긴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2023년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최선을 경주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면 좋겠다. 당신은 지루한 인간입니까? 놀이를 찾으십시오. 당신은 장남감입니까? 일생의 과업을 찾으십시오.

사진

<산에서 노는 반려견들>




Commentaire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