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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최후 유혹>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 한 장면
2022.2.12.(土曜日) “유혹誘惑”
내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그리스 작가를 알게 된 경위는 책이 아니라 영화였다. 1988년, 가을 미국 캠브리지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미국은 카잔차기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도교의 최후의 유혹> 상영을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한때 신부 지망생이었던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가 아니라, 카잔차키스가 소설에서 묘사한 예수를 영상에 담았기 때문이다. 윌렘 대포가, 복음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너무나 인간적이며 흠이 많은 예수 역을 맡았고 하비 키텔은 뉴욕 뒷골목에서 볼 것 같은 부랑아의 모습으로 가롯 유다 역을 맡았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그리스도에 대한 노골적인 신성모독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기 보다는 오래 묵은 예수의 본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자 카잔차키스의 배경과 그가 자신의 소설에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 많은 의문점들이 해소된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1964)라는 소설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인류의 고전들을 현대 그리스어로 번역에 열중하였다. 단테의 <신곡>,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기원> 그리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을 현대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당시 오토만 제국의 식민지였던 크레타 섬, 헤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그의 학부전공과 논문이 의외다. 그는 아테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프리드리히 니체의 법과 국가에 대한 철학>이란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문리대학으로 현 파리4대학)으로 건너가 철학자 앙리 베르송으로 부터 ‘생의 철학’에 세례를 받았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L'Évolution créatrice>라는 책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진화는, 그것이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더 나아가 영적이든 항상 움직이며 예측이 불가능한 내적인 충동, 즉 엘랑비탈Élan vital를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에 아테네 대학에서 썼던 논문 Friedrich Nietzsche dans la philosophie du droit et de la cite을 다시 개작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14년에 그리스도 돌아온 카잔차키스는 그를 그리스정교회 신앙으로 인도할 운명적인 친구를 만난다. 그리스 시인이며 극작가인 안겔로스 시케리아노스Angelos Sikelianos다. 이들은, 그리스 문화와 종교를 파악하기 위해, 마케도니아에 있는 아토스 산을 40일 동안 방문한다. 아토스 산은 수십 개 수도원이 있는 그리스의 정신적인 지주다. 그 후, 거의 2년 동안 그리스 전역을 순례한다. 찬란한 그리스 문명과 문화를 체험하였다. 그가 베를린에 머무를 때, 레닌의 사상을 수용하여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였지만 조셉 스탈린의 국가주도형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껴, 사회주의와 결별한다.
카잔차키스는 현대 그리스어의 표준을 만드는 가교가 되었다. 다른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교양있는 문어체 그리스어가 아니다. 보통 시민들이 사용하는 그리스어인 소위 ‘민중 그리스어Demotic Greek’로 글을 썼다. 그의 선택은 그리스도 <신약성서>가 고전 그리스어가 아니라 평민 그리스어인 ‘코이네 그리스어’고 기록되어 일반인들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작가들은 과거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화려한 문체와 현대 그리스어를 융합하려는 그리스어인 ‘카싸레부사’Katharevousa라는 특별한 언어로 표현하였다. 카잔차키스는 20세 초에 시작한 ‘새로운 아테네 학파New Athenian School’의 영향을 받아 ‘민중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로 정착시키는 기초를 놓았다. 그는 농부나 어부도 읽고 감격할만한 언어로 글을 썼다.
그의 소설의 중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지식인으로 자신의 동방그리스 정교회 교리를 무작정 수용할 수 없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최후 유혹>이나 <다시 못 박힌 그리스도Christ Recrucified>에서 그가 공부한 니체의 사상과 불교의 영향을 받아, 신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 고민은 니체나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는 ‘너무 인간적이며 숭고한’ 지적인 숙고다.
그는 <그리스도의 최후 유혹>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이중 본성, 즉 신에 도달하려는, 더 정확하게 말하지만, 신으로 돌아가, 신과 하나가 되려는 너무 인간이며 너무 초인적인 인간의 갈망은 항상 나에게 측량할 수 없는 심오한 신비입니다. 신에 대한 향수는 너무 신비하고 실제적이라 내 안에서 커다란 상처를 내고 흘러내리는 샘이 되었습니다.어린 시절부터 저의 주된 고뇌와 삶의 기쁨과 슬픔은 영혼과 육체의 그칠 줄 모르는 무자비한 전투였습니다. 내 안에는 인간적이며 전-인간적인 악의 어두운 힘과, 동시에 인간적이며 전-인간적인 신의 빛나는 힘이 존재합니다. 내 영혼은 이 두 군대가 충돌하여 만나는 투기장입니다. 번민은 강렬합니다. 저는 제 육체를 사랑하였고 썩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저는 제 영혼을 사랑하고 쇠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서로 대비되는 이 두 가지 원초적인 힘들을 화해시키려고 분투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이 아니라 동료가 되오 서로가 조화롭게 즐기고 제가 이들과 기뻐하길 희망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혼과 육체에 이 신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비가 단순히 한 종교의 교리에 관한 신비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신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과 영화에서 자신이 실존적인 고민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신앙인들이 당연하게 수용하는 것을 생경하게 보고, 의심하고 스스로 삶에 대한 지혜를 얻으라는 현대인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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