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4.(火曜日) “순교殉敎”
며칠 전부터 내린 비는 야산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 풀, 이젠 다 마른 복숭아 그리고 수많은 밤송이를 도로로 흘려 내려보냈다. 다람쥐들은 신작로까지 내려왔다. 저 밑 하수구로 흘러 내려가다 멈춘 밤송이들 마져 먹고 싶었나 보다. 우리가 다가가니 부리나케 근처 나무 위로 도망쳐 올라가 버렸다.
나는 밤송이들이 이 도로에서 웅장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한 자태姿態를 보고 놀랐다. 품위가 있다. 한결같이 일년 내내 그렇게 단호하게 스파르타 용사들이 자랑했던 밀집대형의 긴 창인 라리사로 온몸을 둘렀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온몸에 둘러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 청명한 가을에 되어 비장한 결심을 내렸다. 스스로 저 높은 곳에서 저 땅밑으로부터 자양분을 끌어오고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자신을 수련하더니, 때차 차니, 자신이 기꺼이 죽어야 할 때를 알아차리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였다.
입추가 되면 서서히 자신이 목숨을 내걸고 붙어 있던 밤나무 가지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하였다. 그 분리가 너무 미세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현미경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과 가지 줄기의 관계를 약화시켜 왔다. 충만한 가을이 그 시점을 알리니, 저 높은 하늘에서 스스로 몸을 저 아래로 던졌다. 마치 이난나Inanna 여신이 저 높은 하늘을 버리고, 저 낮은 땅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밤송이들로, 너도 나도 모두, 이난나여신보다도 더 우아하고 장엄하게 스스로 낙하하였다.
자연의 섭리를 아는 동식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안다. 수메르어 ‘남타르’nam.tar(𒉆𒋻)은 만물의 생존방식이다. ‘남’𒉆은 수메르어로 ‘그것 자체’ 혹은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뜻이다. ‘타르’𒋻는 ‘절단한 것; 측정된 것’이란 뜻으로 그리스 신화에 ‘운명의 신’으로 등장하는 ‘모이라μοῖρα’와 유사한 개념이다. ‘남타르’는 ‘그 존재에게 알맞게 태초에 측정된 것’이란 뜻이다. 밤송이, 시냇물, 나무, 지렁이, 포도나무, 안개, 산, 참새.. 만물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그것을 지금-여기에서 실천하면서 산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인간이 몰라, 철학, 종교, 그리고 예술을 만들어냈다.
길에 너부러져 있는 밤송이를 집으로 가져와 오늘 내 삶의 스승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 장갑을 낀 손으로 밤송이를 집어 비닐 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밤송이가 호통을 친다. “어딜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느냐? 이 신작로 아스팔트 위가 내 무덤이다!”라고 외치면서 아직도 살아 있는 긴 라리사 창으로 천을 뚫고 내 손가락을 찌른다. 순간 밤송이를 놓쳐버렸다. 나는 말했다. “당신을 오늘 내 삶의 지침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집으로 가져가 자세히 당신을 살피고 싶습니다.” 밤송이들과 밤들은, 자신의 이동을 허락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야외식탁 위에 펼쳐놓았다. 밤송이는 숲속의 성게다. 그리고 나고 다람쥐를 비롯한 동물들, 인간을 포함하여, 자신이 일년 동안 일궈낸 진주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창들을 모두 거두고 한없이 부드러운 속살을 하늘 끝까지 펼쳤다. 밤송이의 마음이 감동적이다. 그 마음은, 기꺼이, 아낌없이, 되바라지게 한없이 감동적이다. 네 팔을 너무 펼쳐, 뒤로 완전히 자빠지고 있다.
밤송이는 순교殉敎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순교가 자신이 이해하기도 힘든 사상이라 교리에 세뇌되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음이 아니다. 순교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는 무모함이자 거룩한 용기다. 빌라도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의해 끌려온 예수에게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인가?” 그러자 예수는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빌라도가 다시 묻는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인가?” 그러자 예수가 “나는 진리를 증언하고 왔다”고 말한다. 이 외침에서 핵심은 ‘증언’이다. ‘증언’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는 ‘마르튀르’μάρτυρ인데 그 본래 의미는 ‘순교하다’이다. 그러니 예수는 “나는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으러 왔다”라고 말한 것이다. 순교는 이 밤송이의 마지막 의례다.
우리가 알던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지금 한 줌에 흙이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지막 순간에 우리에게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으로 살면서, 당신이 해야 할 유일한 한 가지를 기꺼이 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의 임무를 알고 있는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기꺼이 이 밤송이처럼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사진
<밤송이들의 순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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