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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면 신선봉 언덕>
2022.1.7. (金曜日) “인과응보因果應報”
(<요가수트라: 훈련경> §13)
겨울산은 을씨년스럽다. 상상을 초월하는 나무들이 낙엽, 솔잎, 밤송이, 도토리로 수북하게 쌓인 산비탈에 자신만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이 모습들은 내가 보면 폼을 잡은 것 같지만, 이들은, 자연의 순환에 맞춰, 자연스럽게 취한 순간의 예술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원칙은 균형이며 조화다. 인간과 인간이 애써 만든 인위적인 조작을 제외한 자연은 언제나 자연스럽다. 자연은, 그 안에서 발견된 동물과 식물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그 운명을 산다.
우리가 올라탄 우주선인 지구는 태양계안에서 밖으로 달아나려는 원심력과 안으로 들어오려는 구심력의 조화로 현재의 위치에서 지난 50억년동안 생존해왔다. 저 높은 산 알 수 없는 수원에서 흘러내려온 물은 계곡을 타고 내려와 마을의 시냇물이 되고, 그 시냇물은 다른 지류들과 합류하여 강을 이룬다. 강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물을 가두는 댐을 만들지 않는 한 바라로 흘러들어간다. 바다는 다시 태양 광선을 통해 수증기를 만들어 하늘로 물을 끌어 올려 뭉게구름을 만들고, 물을 머금은 구름은 적절한 시절에 땅에 비를 내린다.
인간이 문자를 창제하고 도시를 건설 한 후, 법을 만들었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는 282개 조항이나 되는 법을 제정하면서, 인간이 폭력을 다른 인간에게 저질렀으면, 그 폭력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정교한 체계를 만들었다.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가해자가 저지른 똑같은 방식으로, 그가 폭력을 당하는 동태복수법법同態復讐法이다.
고대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도 사후인간은 생전 언행에 대해 엄격한 심판을 받는다. 기록과 기억의 신인 ‘토트’가 그 영혼이 일생동안 한 생각, 말, 그리고 행위를 빼곡하게 적은 책을 읽는다. 이집트인들은 이 기록이 저장창고인 죽은 자의 심장(이집트어 IB)에 담겨있다고 믿었다. 영혼은 저울 앞에 가서 한쪽은 자신의 심장을, 다른 한쪽은 그 영혼이 일생을 통해 추구했어야하는 고유한 임무를 상징하는 ‘마아트’(MAAT)를 올려놓는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훈련경> §12행에서 ‘카르마의 원칙’을 설명하였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 말과 행동은 그것에 대한 결과는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브야사Vyāsa는 이 격언은 쌀과 비교한다. 쌀은 태워졌거나, 줄기와 쌀을 덮은 껍데기로부터 분리된다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없고 자연히 낱알을 맺는 벼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언행인 ‘카르마’karma는 아무리 사소하다할지라도, 그의 심연에 남아 뿌리를 내린다. 그 언행이 심상의 자국이 되어 남는 저장창고를 '카르마사야‘karmāśaya, 즉 ’과거 언행이 마음에 자국을 남긴 저장창고‘라고 부른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은 인간의 마음 깊은 무의식속에 ‘삼스카라’saṃskāra(संस्कार))를 남기고, 그 사람의 미래에 어떤 식으로 표현된다고 믿었다. 삼스카라는 그 사람의 성향, 충동, 습관적인 잠재력, 혹은 내면화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 성격이다. 그들은 기억이 삼스카라 이론의 증거하고 여겼다. 인간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된 고통, 기쁨, 행복, 그리고 불행을 떠올린다.
सति मूले तद्विपाको जात्यायुर्भोगाः
sati mūle tad-vipākaḥ jāti-āyuḥ bhogāḥ
사티 물레 타드-비파카흐 자티-야유흐-보가흐
(어휘)
sati 명사(m.sg.loc) ‘존재’
mūle 명사 (m.sg.loc) ‘뿌리; 근원根源’
tad 지시대명사 (n) ‘그것’
vipākaḥ 명사 (m.sg.nom) ‘열매’
jāti 명사 (f.sg.nom) ‘출생; 카스트’ (<jan ‘태어나다’)
āyuḥ 명사 (n.sg.nom) ‘삶; 일생’ (ā ‘-까지’ + yuḥ <i- ‘가다’)
bhogāḥ 명사 (m.pl.nom) ‘경험; 쾌락; 음식’ (bhuj ‘즐기다’)
(직역)
“뿌리가 존재하면, 그것에 대한 열매가, 출생, 일생, 그리고 경험으로 표현된다.”
(의역)
“우리가 하는 행동의 뿌리mūle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이전에 경험하여 흔적을 남긴 씨와 같은 번노kleśas의 상황에서 창조된다. 그 뿌리로부터 성숙과 열매vipākaḥ가 이어진다. 만일 그 씨가 존재하지 않아 뿌리가 내리 못한다면, 열매가 등장할 수 없다. 그 열매는, 그 사람의 삶의 운명적인 정황jāti에서, 그 운명의 진행āyuḥ에서, 그리고 진행의 경험bhogāḥ에서 드러난다.”
이 경구는 <훈련경> 12행에서 언급한 인간의 행위는 과거의 생각, 말, 그리고 행위에 의해 남겨진 자국들이 뿌리가 되어, 외부로 표현되는 당연한 결과라는 주장의 연장이다. 힌두교에서는 우주를 지탱하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한 개인의 현생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 개인은 영겁의 축적을 통해 드러난 잠시다. 파탄잘리는 그 과거의 축적을 ‘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카르마’ 체계에서 우리의 현생은 이전 삶의 정직한 결과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다음 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현생에서 자신의 언행을 통해 현명하고 자비로운 선택을 감행한다.
첫 번째, 그 존재가 ’출생jāti‘이다. 인간은 인도의 출신제도에 의하면, 브라만(Brahman:사제), 크샤트리아(Kshatriya:귀족·무사), 바이샤(Vaisya:상인·농민·지주), 그리고 수드라(Sudra:소작농·청소부·하인)로 태어날 수 있다. 혹은 인간이 아닌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이렇게 태어나는 운명적인 출생이 ’자티‘다. 누구는 부잣집 자녀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 자녀로 태어난다. 우리의 존재가 결정된 환경, 그것이 자티다. 운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전 삶에서 그가 행한 선택을 통해, 현생에서 주어진, 결정된 운명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그런 깨달음을 인식하고, 이번 삶에서 내가 선택하는 의도적인 운명이다. 자티는 인간을 삶을 장구하고 숭고하게 만든다. 내가 오늘 하는 언행이, 나라는 생명이 우주에서 사는 동안, 그 영겁의 존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 존재가 ‘야유흐āyuḥ’다. 야유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유지하는 건강 혹은 수명이다. 이 딘어는 인도-유럽어 어근 *ayu-에서 유래했다. 이 어근은 ‘활력; 인생; 수명’을 의미한다. 이 어근은 아베스티어에느서는 ‘아이유’(aiiu),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아이온aiōn’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힘이다.
세 번째 ‘보가bhogāḥ’다. 보가는 내가 일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대한 경험의 정도다. 어떤 사람을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축구하기를 좋아한다. 각자가 자신의 몫에 따라 경험하는 정도가 다르다. 만일 그가 자신의 몫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자신의 직업에서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이다. 마지못해 해야한 일로, 매일 매일을 피곤하게 산다. 어떤 이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매일 매일의 삶이 행복하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가야할 일을 위해 운명을 선택하고 개척하고 있는가? 인과응보는 우주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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