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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土曜日) “소선小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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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나를 찾아온 광선>

2022.1.1.(土曜日) “소선小選”

새해가 시작할 참이다. 태양은 자신이 관리하는 행성들과 그 안에 거주하는 존재들을 위해, 지난 50억년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따스함을 선물해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태양은 약속을 지킨다. 인간이 아직 태양을 맞을 자격도 없어도 상관없다.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이 자비로운 태양은 우주 끝에서 자신의 최선인 광선光線을 아낌없이 보낸다. 광선은 신의 은총이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그런 태양광선이 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아침이 다 되어 일어난다I Wake Close to Morning>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Why do people keep asking to see

God’s identity papers

when darkness opening into morning

is more than enough?

Certainly any god might turn away in disgust.

Think of Sheba approaching

The kingdom of Solomon

Do you think she had to ask,

“Is this the place?”

왜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는 정체성을 담은 논문을

보여 달라고 계속 묻는가?

어둠이 아침이 되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

충분힌 증거가 아닌가?

분명,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 가짜 신도 넌덜머리를 내며 도망칠 것이다.

솔로몬의 왕국에 다가선 시바 여왕을 생각해 보라.

그녀가 “이곳이 그 장소입니까?”라고 묻겠는가?

여명黎明은 시바여왕의 깨달음이다. 새해 첫날, 태양의 기운을 산에서 만끽하고 싶다. 실내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영하 14도는 잔인하다. 방한복을 겹겹이 입고 귀를 덮는 털모자, 거북이 목도리, 마스크까지 착용하였다. 손 장갑 위에 가죽 스키장갑까지 끼었다. 손가락 끝이 스며드는 냉기가 얼얼하고 찌릿찌릿하다. 신선봉으로 가는 산책길에, 어제 놓은 고라니 사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내가 한 작은 행위가 이름 모를 고라니의 배고픔을 잠시나마 달래주었다니 행복하다.

행복한 삶은 ‘대선大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늘, 새해 첫날 내가 마음 속에서 결정하는 행동으로 옮기는 ‘작은 선택’을 통해서만 서서히 이루어진다. 행복은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작은 선택, 즉 ‘소선小選’만이 대선이다. 요즘 우리는 대선에 나선 사람들의 얼굴 표정, 걸음걸이, 남들에게 하는 말, 그리고 행동에 실망한다. 이들에 관한 뉴스가, 어디에서는 우리의 눈과 귀를 장악한다. 아! 그들이 우리의 적나라한 얼굴이며 우리 국민들의 평균이 아닌가!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다. SNS가 주도하는 세상은 우리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내용들, 자극적인 내용들을 표제를 장식하여 우리의 목을 짓누른다. 대선주자들의 부정적인 면이 가십거리이며 미디어의 시청률이란 사실을 잘 안다. 누가 대선에 나와도, 그 사람의 수준은 우리와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우리 교육은 경청하고 토론하는 법을 가르친 적이 없고, 우리는 그것 수련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교육혁명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투표를 통해 리더를 결정하는 현 ‘민주주의 체계’는 차악일 수 에 없다.

우주를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조용하다. 그 힘은 바퀴와 같다. 그 중심이 비워져있고, 중앙에서 나간 창살이 바깥에 정교하게 연결되어있을 때, 속도가 붙어도 소음을 내지 않고 고요하다. 고대 인도인들은 이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다. 자신을 비우고, 그 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기술을 통해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안녕을 추구하였다. 이 행복이 산스크리트어로 ‘수카’sukha다. 그러나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타인을 변화시키겠다고 나설 때, 불행이 시작된다. 이 불행이 산스크리트어로 ‘두흐카’duhkha다. ‘두흐’는 ‘창살이 잘못 연결된’이고 ‘카’는 수레바퀴의 중앙에 위치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자신의 욕망에 휩싸여 사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려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잘못을 섬세하게 찾아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수련한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을 고치려하지만, 현명한 자는 어제의 자신을 타인으로 여기고, 그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어제의 자신을 개선하고 개혁하는 수고는 단순히 욕심을 제거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제거는 시작에 불과하다. 자신을 개선하지 않고 무의미와 우울에 빠진 대중은 불행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그런 대중의 우울을 보았다 그는 <악의 꽃Fleurs du mal>에 등장하는 ‘일곱노인Les Sept vieillards’이란 시에서 현대인들의 불행을 다음과 같이 슬퍼한다.

Les Sept vieillards

À Victor Hugo

일곱노인

빅토르 위고에게

Fourmillante cité, cité pleine de rêves,

Où le spectre en plein jour raccroche le passant!

Les mystères partout coulent comme des sèves

Dans les canaux étroits du colosse puissant.

우글거리는 도시, 꿈으로 가득 찬 도시,

유령이 대낮에 지나가는 사람을 인도하는 장소!

어디에서나 신비 나무의 수액처럼 흘러나와

웅장한 거인의 좁은 수로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Un matin, cependant que dans la triste rue

Les maisons, dont la brume allongeait la hauteur,

Simulaient les deux quais d'une rivière accrue,

Et que, décor semblable à l'âme de l'acteur,

Un brouillard sale et jaune inondait tout l'espace,

어느 날 아침, 슬픈 거리 안에 있는

그 높이가 안내로 늘어난 집들이

불어난 강물이 강둑을 자극하고

-이 장면은 배우의 영혼과 닮았다-

더럽고 누런 안개가 모든 공간을 홍수처럼 뒤덮어버렸다.

Je suivais, roidissant mes nerfs comme un héros

Et discutant avec mon âme déjà lasse,

Le faubourg secoué par les lourds tombereaux.

Tout à coup, un vieillard dont les guenilles jaunes

Imitaient la couleur de ce ciel pluvieux,

Et dont l'aspect aurait fait pleuvoir les aumônes,

나는 한 영웅처럼 내 신경들을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이미 피곤한 내 영혼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무거운 쓰레기 마차로 흔들리는 더러운 거리에

갑자기 한 노인이 입은 누더기 누런 옷은

비 내린 하늘과 같은 색깔이었다.

그 모습은 그에게 많은 구호물품들을 가져올 만 하다.

Sans la méchanceté qui luisait dans ses yeux,

M'apparut. On eût dit sa prunelle trempée

Dans le fiel; son regard aiguisait les frimas,

Et sa barbe à longs poils, roide comme une épée,

Se projetait, pareille à celle de Judas.

그의 눈이 빛나는 사악함이 없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눈동자는 쓸개에 젖어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의 시선은 서리를 날카롭게 갈았고

긴 수염은 칼처럼 딱딱하다.

그는 예수를 판 유다처럼 보였다.

나는 2022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한시도 쉬지 않고 펄럭이는 깃발을 든 사람의 말과 그 말을 악화시켜 전달하는 또 다른 깃발을 들고 뒤흔드는 사람의 말에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아침 일찍 내가 정성스럽게 마련한 시간과 장소에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굳지 하지 말아야할 나쁜 습관’을 그 날에 하지 않는 선택으로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시작할 것인가? 그 작은 선택, 즉 소선小選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변화시키는 유일한 대선大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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