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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金曜日) “아버지”

사진

<새벽산책 중인 아버지>

2021.12.24. (金曜日) “아버지”

갑자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뵙고 싶어 일산으로 갔다. 부모님은 일산이 맨 처음 개발될 때, 1990년, 일산이 맨 처음 개발될 때부터 일산에 거주하고 계시다. 오후 10시경, 더코라 근처에 있는 3호선 압구정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안은 언제나 진풍경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귀를 이어폰으로 막았다. 눈은 핸드폰의 조그만 액정에 집중되어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다. 현대인은 사회가 교육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취미를 제공받지 못했다. 우리는 그 조그만 ‘바보수첩’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달콤한 설탕조각’에 탐닉된 중독자이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소설가 조지오엘이 말한 디스토피아가 과연 도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 하나 고개를 드는 사람이 없다.

일산 주엽역에 내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로 걷기 시작했다. 그랜드백화점 앞에서 신호등을 건너니, 아파트 단지 중앙에 나무가 빽빽이 늘어선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등장했다. 멋지고 평온하다. 예전에는 이런 여유를 고안할 지도자가 있었고, 그것을 실행해 옮길 수 있도록, 산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민들이 있었다. 겨울 추운 밤이지만, 시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삼삼오오 산책하고 있었다. 15분정도 걸으면 부모님 아파트가 나온다. 그들은, 이곳에 초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거의 이주하고, 젊은 분들이 많이 이사해 왔다고 말하셨다.

부모님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30분경이다. 부모님은 환갑이 다된 아들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가 보다. 따뜻한 율무차를 내 주시고, 내 얼굴을 인생에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쳐다보신다. 부모님의 눈에 자식은 언제나 연민의 대상이다. 요즘 부모님의 걱정은 두 가지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더코라’다.

어머님은 내가 지난 삼년동안 쓴 매일묵상을 하루도 빠지지 정독하시고 오자, 탈자, 그리고 의문이 나는 점을 공책에 정서로 쓰시고, 그것을 카톡으로 보내신다. 그것이 아침 일상이다. 내가 그 정성에 보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으론 어머니의 수정안을 매일 반영하고 싶다. 지난 9월에 더코라에서 니체와 단테공부를 시작하여 스케줄을 장악하지 못해, 블로그, 페북, 그리고 유튜브에 댓글에 답글을 달지 못했다. 앞으로는 달고 싶다.

아버님은 ‘더코라 유투브’의 가장 열렬한 팬이다. 모든 영상을 보시고 격려해주신다. 특히 수요묵상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성경을 깊이 알고 자신을 관조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신다. 아버님은 31년생으로 올해 91세다. 주위에 친구 분들이 거의 돌아가셨거나 거동이 불편하신데, 아버님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영혼은 점점 맑아지고 신체는 나이게 맞게 자연스럽게 변화하셨지만, 아직도 무슨 음식이든지 맛있게 잡수 실수 있고 언제나-어디서나 주무시고 싶을 때, 주무실 수 있다.

'어버님은 지난 20년 동안, 세 차례 큰 수술일 받으셨다. 20년 전과 10년 전에 심장조형수술을 받으셨다. 심장 박동기를 신체 안에 넣고 다니신다. 6년 전, 85세 때, 어머님 생신날엔, 우리도 몰래 일산 백병원에 가서 스스로 입원하셨는데, 알고 보니 대장파열이었다. 그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대장을 잘라내셨다. 그 후, 의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재활운동과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아버님의 불굴의 의지가 다시 한번 작동된 것은, 그 의학적인 선고였다. 일제 시대 소학교를 다니시고 학도병으로 인민군과 전투하다 세 번씩이나 포로로 잡혔지만, 기적적으로 생존하신 아버님에게 재활치료는 자존심이 상하는 처방이었다. 아버님은 그 때부터, 지난 6년간, 매일 새벽 4시30부터 6시까지 하루로 빠지지 않고 만보를 걸으셨다. 지금은 나보다 더 건강하시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1시쯤 잠이 들었다. 나는 아버님 서재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 4시30분에 아버님이 들어오셔서 새벽산보를 준비하신다. 아들이 그런 아버님의 산책을 누워서 보는 것이 창피했다. 나도 산책에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어머님도 4시 30분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계셨다. 그 봉독은 아마도 지난 70년간 해오시던 일이다. 매일 5장정도 성경을 읽으셔서 성경을 수십번 이상 읽으셨을 것이다. 내가 어제 부모님댁에 늦게 와서, 새벽산책시간이 5시로 늦춰졌다.

아버님은 이 시간은 4시 반에 비해 산책하는 사람들이 좀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아버님이 앞서 걸으신다. 아파트 사이로 걸으신다. 대한민국이 아파트사이에 이런 녹지를 마련했기 때문에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만의 경로가 있다. 정면을 응시하고 숨을 고르시면서 곧장 걷는다. 걸음 속도가 빠르시다. 30분이나 걸으신 후 입을 여셨다. “새벽산책은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이고 예배다.” 내가 글을 쓰고 산책하는 습관이 부모님께 받은 유산같다. 저 멀리서 두 분이 걸어오신다. 한 분이 아버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동반한 분에게 말씀하신다. “이분이, 새벽산책하시는 분들 가운데 가장 어른이셔! 우리는 아직 어린애야!” 그 곁에 계신분이 놀라신다. “정말 92세라구요! 제가 83세인데, 존경합니다.” 92세까지 자신의 신체를 이렇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성공한 삶이다. 그 분들은 벤치에 앉아 아버님이 걷는 모습을 눈이 휘둥그레져 한번 보신다.

우리는 중간 지점에 도착하였다. 산책로 운동기구들이 모인 놀이터다. 아버님은 두 말도 하지 않고 모든 운동기구 하나하나를 모두 이용하신다. 거꾸로 매달리기, 큰활돌리기, 작은활돌리기, 허리돌리기, 노젓기, 매달려몸비틀기, 역기내리기, 그리고 윗몸일으키기. 하나하나를 모두 하니 몸에서 땀이 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다시 30분정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6시 15분이다. 아버님께서 만보기를 보신다. 7000보였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가 만보를 채우실 작정이다. 크리마스 전날, 아버님의 산책과 어머님의 성경읽기를 보고 큰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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