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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 (水曜日) “희망希望, 혜인이 일기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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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이 2021.11.22.-11.25일기>

2021.12.1. (水曜日) “희망希望, 혜인이 일기日記”


오미크론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우리를 다시 벼랑 끝으로 질질 끌고 간다. 5명 중 4명이 무증상으로, 환자는 자신이 감염되었는지조차 모른단다. 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은 지속되어야 하는가? 그냥 포기해야하는가? 인간은 인간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사는 동안 신나는 일을 찾아 몰두하기 때문이다. 그 신나는 일이 나에게 좋고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적이라면, 그(녀)는 행복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는 신들의 모든(pan) 속성을 부여받는(dora) 존재였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한다. 신들은 상자, 아니 ‘항아리’를 선물로 주면서, 절대로 열지 말하고 명령했다. 그런 명령만 없었어도,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신이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꼭 집어서 경고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그 나무의 열매를 호기심에 맛본 것이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죽음, 질병, 질시, 폭력과 같은 악들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너무 급한 나머지 상자를 닫았고, 마지막 하나를 간직할 수 있었다. 그것이 ‘희망希望’이다. 사실 판도라가 간직한 것이 아니라, 제우스 신이 희망만은 남아있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 이유를 가만히 보면 고약하다. 니체는 제우스 신의 의도를 간파하고, 1879년에 저술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로운 영혼들을 위한 책>에서 희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우스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쉽게) 져버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아무리 다른 악들이 그를 아무리 고통스럽게 만들어도, 자신의 삶을 버리길 원치 않고 자신이 (헛된 희망으로) 계속해서 고통을 경험하길 바란다. 이 목적으로 신은 인간에게 희망을 주었다. 사실 희망은 최악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염세주의는 너무나 실질적이라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 코로나 상황에서 누가 고통을 당하지 않는가? 나는 판도라가 간직한 ‘희망’을 그 원래 의도하고는 달리,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지난 일요일 태풍태권도장에서 나올 때, 10살 혜인이가 몰스킨 수첩 일기장에서 판도라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혜인이는 빼꼼하게 매일 일기를 적는다. 한 줄 한 줄 자기 삶의 고민을 가감없이 적기에 감동적이다. 이 일기를 훔쳐보는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비춘다. 혜인이의 일기를 필사하고 싶다. 다음은 혜인이 일기다.

2021/11/22 월 일기˅, 녹음˅, 독서˅, <심연> 102-103 필사

기회

기회는 소중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살아가면서 기회를 계속 얻어온 것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내가 위대한 나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기회이고 사이가 좋지 않은 오빠를 만난 것도 어쩌면 나보고 인내심을 훈련할 기회를 준 것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기회의 소중함은 언제 빛을 볼 수 있을까? 그 기회를 얻은 자가 그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해서 뭐 하나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때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일단 적는다. 못알아 들어도 듣는다. 그리고 질문해야한다. 내가 진짜 내것으로 만들려면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When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배우면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쓰는 지를 모르면 소용이 없지 않는가. 내것으로 만들려면,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하고 스스로 필요를 느껴 부탁을 해야 한다. 나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아 뭐 난 아직 별로 안 배웠으니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 안 배웠으니까 지금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질문을 하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설명을 해주시는가? 아니다. 내가 필요해야 한다. 그럼 나는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제서야 깨닫는 내가 정말 부끄러우면서도 그럴 수 있게 해주시는 관장님이 계셔서 감사하다. 굳이 기회를 잃으면서까지 소중함을 알고 싶지 않는 이상, 알고 있을 때 실천하자.

2021/11/23 화 일기o, 녹음o, 독서o, <심연> 103-105 필사

하자

오늘 운동시간이 기본기하고 체력단련만하다가 끝났다. 버피테스트를 한 100개는 넘게 한 것 같다. 수업시간에 싸운 것, 내가 아닌데 왜 다 같이 체력단련을 했을까. 싸우는 것을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시간에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 싸움을 말리지 않았다. 시간이 소중한지 몰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 바로 뒤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가만히 숨을 돌리고 있었다. 아무리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내 친구들이었고 운동시간을 낭비한 건 맞다. 주변에 신경을 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똑똑하면 뭐하는가. 써먹지도 않고 있는데. 아무리 자신이 똑똑해져야 해도 나는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다. 특별한 생각을 해서 행동해야한다. 행동을 안하면, 결국 헛똑똑이가 되는 것이다. 써먹지도 않는 배움은 쓸데없는 잡동사니나 마찬가지다. 내가 그런 명품으로 (나를) 만들려면, 행동을 해야한다. 할 수 있는데, 않하는 게 제일 나쁜거다.

하자.

2021/11/24 수 일기o, 녹음o, 독서o, <심연> 105-107 필사

에너지

나는 지금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일어나지 마자 학교애 가기 싫다고 중얼거렸는가? 아니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에너지를 썼는가? 하루에 주어진 에너지를 바꿀 수 없는 것에 낭비하기 보다는 ‘위대한 나’를 만드는 곳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신경쓰지 않기로했다. 나한테 누가 시비를 걸어도 굳이 일일이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낚시 같은 것이다. 상대는 장난으로 에너지 1이 담긴 미끼를 던진 것이고 거기에서 내가 에너지를 점점 낭비해가는 것이다. 에너지를 잘 쓰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찾아야한다. 굳이 내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물론 참는 건 힘들겠지. 참지 못하는 것을 견디는 게 인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내 인생은 위대해진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분야에서 하루 하루 나를 극복하고 위대한 인간이 되자.

2021/11/25 목 일기o, 녹음o, 독서o, 손미나의 <나의 첫 외국어 수업> 155-157

믿음

나는 나를 믿는가?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고 있는가? 아직도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할수 있는 것도 못한다. 예를 들어 다리찢기를 할 때 나는 그냥 찢는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찢을 수 있다. 내가 이미 다리를 찢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못할 것이라는 의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줄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할 땐 걸린다. 아파죽겠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포기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영어를 할 때, 안 외어지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느데 계속 가만히 있다. 아. 나는 쓸데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무의식 중에 다른 방법은 못할거라고 믿은거다...

혜인에 일기수첩을 옆으로 사진 찍어, 고개를 옆으로 틀어 필사하느라, 고개가 아프다. 일기를 필사하면서, 나에게 준 희망, 웃음, 그리고 행복에 비하면, 그런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다. 2021년 12월을, 혜인이 과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니체가 말한, 초인의 마음인 순수, 망각,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 최초의 움직임, 그리고 ‘거룩한 긍정’으로 2021년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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