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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럴드 이끼 바위들>
2021.11.30. (火曜日) “에머럴드emerald”
11월 마지막 날이다. 아침부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침 산책을 지난 9년동안 진행하였지만, 대문밖을 나서기는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과 같은 날씨는, 이 아침 의례를 생략할 강력한 변명이다. 폭설은 오히려 산책하기 쉽다. 반려견 벨라와 샤갈에게 눈은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눈길에서 꽁꽁 언 발을 하나씩 들고 호호 불러 달라고 나를 처량하게 쳐다 보지만, 푹신한 눈밭은 남기는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길수 있는 거대한 백색 도화지다. 비, 특히 겨울비는 다르다. 온몸으로 차가운 빗방울을 견뎌내야하고, 무겁고 축축한 털로 걷기를 감래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과 같으면 이런 날씨를 핑계로 산책을 건너 뛰기 일 수였다. 며칠 전 내가 새로 시작한 아침의례로, 거뜬히 수중 산책을 감행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준수하는 의례는, 트레드밀에 올라가, 20분정도 걷고 뛰는 것이다. 실내조깅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 깨운다. 나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I.4에 ‘육체를 무시하는 자들에게Von den Verachtern des Leibes’라는 글의 충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Den Verachtern des Leibes will ich mein Wort sagen.
Nicht umlernen und umlehren sollen sie mir,
sondern nur ihrem eignen Leibe Lebewohl sagen und also stumm werden.
“Leib bin ich und Seele” so redet das Kind.
Und warum sollte man nicht wie die Kinder reden.
Aber der Erwachte, der Wissende sagt: Leib bin ich ganz und gar, und Nichts ausserdem; und Seele ist nur ein Wort fur ein Etwas am Leibe.
“육체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말 좀하겠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게 혹은 배울 수 없게 만들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육체에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을 수 밖에 없습니다.
(깨어난 자이며 초인인) 어린아이가 말합니다. “나는 육체이며 정신이다.”
왜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말하지 않습니까?
깨어난 자, 아는 자는 말합니다. “나는 온전하게 육체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신은 육체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이름일 뿐입니다.”
니체는 내 삶의 방식을 온전히 바꿨다. 하루일과를 좌정스러 시작하던 방식을 버렸다. 나는 트레드밀 달리기로 아침을 맞이한다. 달리기는 묵상과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다. 나는 유니클로에서 구입한 짙은 남색 비옷을 걸치고 반려견들과 산책을 시작하였다. 약간의 땀이 흘러는 몸은 겨울비도 거뜬하게 견뎠다.
적어도 지난 한달 간 아무도 찾이 않았던 것 같은 등산길로 들어섰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동네 개들이 멀리서 짖어댄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비오는 겨울산은 훨씬 을씨년스럽다. 맑은 날엔 보지 않던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닥은 온통 갈색으로 변한 솔잎으로 푹신푹신하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회색과 짙은 고동색으로 변했다. 병풍으로 둘러쌓인 나무들 사이사이 사이로 옅은 안개가 춤을 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티피나 청록색을 띤 에머럴드 빛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누가 그렇게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른 보석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자연의 힘이며, 비바람이 만들어 낸 언덕의 장식들이다.
‘에머럴드’emerald라는 영어단어는 오래된 셈족어다. 기원전 2500년경 사막에 살던 아카드인들이, 이 신비한 색을 내던 에메럴드를 ‘빛을 발산한다’라는 동사 ‘바라쿠’baraqu𒁀𒊏𒄣에서 유래한 ‘바라케트’baraqet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고대 이집트로 건너가 상형문자 이집트어로 bwyrqꜣ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신비한 색을 띤 에머럴드를 ‘(스)마라그도스’μάραγδος로, 라틴어로는 smaradus, 중세영어로는 emeraude로 차용되었고 영어의 emerald로 정착되었다.
11월도 에머럴드 바위들과 함께 저 만치 달아난다. 2021년 11월은 매리 올리버의 “내가 숲속에 있을 때”라는 시도 보내고 싶다.
When I am Among the Trees
Mary Oliver
When I am among the trees,
especially the willows and the honey locust,
equally the beech, the oaks and the pines,
they give off such hints of gladness.
I would almost say that they save me, and daily.
내가 나무들 사이에 있을 때,
특히 버드나무와 주엽나무.
특히 너도밤나누, 참나무, 그리고 소나무 사이에 있을 때,
그들은 나에게 즐거움을 발산합니다.
그들이 나를, 매일 구원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I am so distant from the hope of myself,
in which I have goodness, and discernment,
and never hurry through the world
but walk slowly, and bow often.
제는 자신에 대한 희망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 희망에는 착함과 안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천천히 걷고 종종 고개를 숙입니다.
Around me the trees stir in their leaves
and call out, “Stay awhile.”
The light flows from their branches.
내 주위 나무들이 자신들의 잎사귀들을 떨며
부른다. “조만만 더 있어봐!”
빛이 가지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And they call again, “It's simple,” they say,
“and you too have come
into the world to do this, to go easy, to be filled
with light, and to shine.”
그리고 다시 부른다. 그들이 말을 건낸다. “그거 쉬워.
너도 이것을 하기 위해 세상에 온거야. 서두르지마. 빛으로
가득 채워 그리고 빛을 발산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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