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성립이 가능한가? 정치체제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정치 혹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대중문화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교양과 소양으로 구성된 허술한 건축물이다. 민주주의가 거대한 건물이라면, 시민이나 국민은, 그 건물을 견고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벽돌 한 장이다. 리더는 그 벽돌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정교한 설계도면을 가지고, 석공들과 벽돌들을 함께 쌓아 올리는 건축가다.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 democracy는 고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라는 말에 유래했다. 이 단어는 ‘대중’을 의미하는 ‘데모’와 권력을 쥐고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 ‘크라티아’의 합성어다. 대중은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기에, 누군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잠정적인 ‘리더’를 선출해야한다. 이 선출과정이 ‘투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소위 ‘공정한’ 투표를 통해, 상대방보다 많은 표를 득표한 사람이 리더가 된다. 누가 많은 표를 가져갈 수 있는가? 그 문제는 명약관화하다.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인간은 결국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한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타인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희로애락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려는 ‘교육’을 수련하지 않는 한, 이기적인 동물이다. 우리의 교육이 타인과의 경정을 통해, 자신의 성공만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육이아니라 반인륜적인 타락이다.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라는 신기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중’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를 리더로 선택한다. 그 경쟁자는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흑색선전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대중의 이익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더에 대한 지지도가 매일 매일 급변하는 이유다.
결국, 괜찮은 리더를 선출하는 안목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목에 달려있다. 한 국가의 리더는, 그가 치리하는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평균치다. 러시아인은 거들먹거리며 걷는 푸틴이고, 중국인은 세번째로 정권을 휘두르려는 전체주의자 시진핑이다. 미국인은 You are fired!라고 상대방을 안하무인격으로 폄하는 트럼프다. 북한은 자신의 몸뚱이 하나 가름하지 못하는 젊은이 앞에서 그가 하는 말을 고개도 들지 않고 받아 적는 로봇이다. 결국 이들을 리더로 선택한 국민들, 더 나아가 그런 리더를 선출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한 미디어와 논객들이,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소수들은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있지 않은 한, 인기에 영합하는 선동주의자가 리더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으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은 언제나 소수의 귀족들만 교육하였다. 이런 엘리트 교육은 아직도 서구 대학의 기반이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시민교육을 귀족교육이 아니라 대중교육으로 전환시킨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리스 비극작가들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소수 엘리트 교육을 주장하는 철학자들과는 달리, 대중교육만이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깨달았다.
그들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가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 후, 새로운 방식의 의례를 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테네에서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된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종교의례를 시민의례로 대중문화로 탈바꿈한다. 이 종교의례가 ‘비극경연’이다. 극작가들은 일 년 내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들과 비극을 연습한다. 비극이란 장르는 후대에 등장하는 희극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비극의 주인공은 언제나 영웅이나 왕족이다. 비극은 평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귀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비극의 결말은 언제나 파국이다.
기원전 472년, 아테네 원형극장에 최초의 비극이 상연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의 제왕 크세르크세스와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지 8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약관의 페리클레스는 천재 작가 아이스킬로스와 협업하여 <페르시아인들>이란 비극을 무대에 올렸다. 아테네 시민들은 참전용사들이거나 그 유족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에서 순직한 아버지, 형제, 친척, 친구의 투구를 들고 가만히 연극을 보기 위해 앉았다.
드디어 <페르시아인들>이란 연극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첫 장면부터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보길 원했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이나 아테네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용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예들들어, 율둘목 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 절제다. 이 비극의 첫 장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수사Susa다. 성을 지키던 페르시아 군인들이 애타게 연기신호를 기다렸다. 막강한 병력을 소유한 페르시아 제왕 크세르크세스의 승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승전보는 오지 않았다.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불길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죽은 선왕 다리우스가 혼령으로 등장하여, 페르시아가 해전에서 무참하게 패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이 소식을 들은 아토사와 페르시아 귀족들은 절망과 회한으로 가득 차 아무런 말로 할 수 없었다. 인간이 극도의 불행을 경험하면 나오는 말은 ‘감탄사’ 뿐이다. 그들은 그 심정을 그리스어로 ‘엘레이오이’eleioi라는 말로 표현한다.
‘엘레이오이’는 굳이 번역하자면,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혹은 ‘아, 너무 슬퍼 어두운 지옥으로 내려가는 기분이구나’ 정도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무너진 경험을 ‘슬픈 노래’란 의미를 지닌 구약성서의 <애가>로 표현하였다. <애가>를 시작하는 첫 단어가 히브리어로 ‘에이카’eika인데, 그 의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뜻이다. 그리스어 ‘엘레이오이’와 히브리어 ‘에이카’ 모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의성어擬聲語다. 의성어는 동물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단어다.
마침내 만신창이가 된 크세르크세스가 마침내 무대에 등장한다. <페르시아인>의 마지막 장면인 크세르크세스와 페르시아 귀족들로 구성된 합창대의 돌림노래는 다음과 같다.
(크세르크세스)
1074 ἰὴ ἰὴ τρισκάλμοισιν, (이에 이에 크리스칼모이신)
1075 ἰὴ ἰή, βάρισιν ὀλόμενοι. (이에 이에 바리신 올로메노이)
(합창대)
1076 πέμψω τοί σε δυσθρόοις γόοις. (펨프소 토이 세 뒤스로오이스 고오이스)
(크세르크세스)
1074.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우리가 자랑하던 삼단노선에서
1075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거기서 사라져단 이들이여!
(합창대)
1076 “이 슬픈 노래를 부르녀, 우리는 당신을 보냅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하여 승승장구하는 장면이 아니라, 페르시아인들의 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헤아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들이 관객으로 본 것은, 원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본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흘러 내려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들은 그리스 비극이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원수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시민이 되었다. 이 비극을 시민들과 함께 맨 앞줄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페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서, ‘이것이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지사지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정치체계다. 그런 연민이 없다면, 금방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형용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 심지어 원수의 아픔까지 헤아리는 마음을 그리스어로 ‘엘레오스’eleos(Ἔλεος)라고 불렀다. 엘레오스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 슬프도다!’라는 ‘엘레이오이’에서 파생된 단어다. 당신은 친구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까?
당신은 원수를 눈으로 세상을 볼 의향이 있습니까? 우리의 대중문화와 미디어는 ‘엘리오스’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사진
<시라큐스 그리스 원형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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