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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9. (土曜日) “극복克服”


이낙연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당 대표가 되었다. COVID-19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그는 ‘국난을 극복克服’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그의 행보가 사분오열하고 거대한 풍랑을 맞아 침몰직전의 대한민국이란 함선의 키를 잡아 안정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현재 우리를 포함한 전 인류가 처한 상황은 ‘막중莫重’하다. ‘막중’의 ‘막’莫 단어 안에는 절망이 담겨있다. 이 글자는 농부가 일을 하려고 논밭으로 나섰지만, 해가 저물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한다. 농부는 훤한 대낮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에 최선을 경주할 수 있지만, 컴컴한 밤에는 자신의 걸음조차 보장할 수 없기에 불안하다. ‘막중’의 ‘중重’이란 단어에는 허망이 담겨있다. 마치 자신이 헤쳐 나가야할 일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나서는 어리석음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가 머나먼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몸무게 보다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지고, 자신이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고 미리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임무任務’란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구별된 일이다. 인생이란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이 연기해야할 배역이다. 인간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을 찾아 집중하는 사람, 그런 일에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평화로운 시절엔, 농부는 농부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상인은 상인대로, 자신에게 맡겨진 천부적인 일을 묵묵하게 행하면 된다. 그러나 2020년 1월부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인 COVID-19 상황에서 그 ‘임무’는 누구에게나 한없이 버겁다. 그것은 마치 외나무 다리 위에서, 이길 수 없는 몸집 큰 상대를 만나 견디고 심지어 극복해야한 어려움이다.

COVID-19은 지난 8월간 2500만 명을 감염시켰고 80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그 감염속도가 줄기는커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먼지보다도 수천 배나 미세한 바이러스가 온 인류를 볼모로 잡아 요구한다. “너희들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틀을 마련하라!”. 인류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을 통해 최선을 유추하는 문화와 문명을 기초로 진화해왔다. 학교, 종교시설, 공연장, 운동장과 같은 가시적인 건물은 인간의 천재성을 노래하고 확인하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이런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임을 중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COVID-19은 대면문화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알던 문화와 문명, 대표적으로 행정, 배움, 그리고 신앙생활은, 더 이상 대면을 기반한 가시적인 건물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인터넷 공간에서 펼쳐질 것이다.

이의원은 자신이 여당의 당대표로서 가장 시급한 임무는 감염병으로 야기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국난의 극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극복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여 ‘승리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승리란 그 대상이 분명하고 그 대상을 이길 수 있는 확실한 무기, 예들 들어 백신이 개발되었을 때 가능하다. 지금은 ‘코로나와 함께’ 생활해야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할 시기다. 이 시기는 마치 새로운 시즌에 반드시 참가해야하는 운동선수의 겨울캠프와 같다. 감독과 선수들이 추운겨울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면서 다음 시즌에 다수의 경쟁 팀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교한 전략을 짜야한다. 이 새로운 전략과 훈련이 승리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국민한사람 한사람이 ‘거리두기’를 실천해야한다. 거리두기에서는 두 가지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다른 자신의 삶을 응시하여 군더더기가 없는 삶으로 전환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다. 개인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매일 발표하는 지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연히 실천해한다. 이 수동적인 거리두기는 개인의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을 통해서만 성공한다.

개인의 ‘생활 속 거리두기’란 자신의 언행을 깊이 관찰하는 ‘자기응시’가 필수다. 인간은 어제의 습관대로 오늘 행동하기 마련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란 그런 어제의 삶을 지속하고 연명하려던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보는 행위다. 그런 과거의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천천히 복기하여,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고 감동적이지 않은 언행을 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결심이다.

거리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을 개체로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다. 만일 만물이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우주 안에서 그런 거리를 용납하지 않은 상태가 ‘혼돈’이며 ‘혼돈’이 지배하는 장소가 ‘블랙홀’이다. 블랙홀 안에서 만물의 거리두기를 파괴한 채, 무형의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개인으로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상대방의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갑질이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다.

COVID-19이 인류에서 새로운 문명의 틀과 그 문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문법이란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 지혜를 모아 마련한 기존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와 해체일수도 있다. 이 감염병과의 전쟁에 승리는 가능하지 않다. 우선 생존하면서 그 대안을 조용히 모색할 시점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숙고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야한다.

허허벌판에 홍안의 소년 다윗이 산과 같이 거대한 블레셋 장군 골리앗 앞에 섰다. 사람들은 모두 골리앗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다윗은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한다. 이 시점에서 타인의 조언의 그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다윗은 가만히 자신의 어깨에 멘 돌 주머니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 오른 손에 쥐고 가만히 만진다. 그리고 그는 상상한다. 이 돌멩이를 무릿매에 가만히 담아 힘차게 돌려 골리앗 이마 중간에 명중시킬 것이다. 이의원이 자신의 돌멩이가 무엇인지 고요한 시간을 수련하면 좋겠다.

사진

<응시하고 있는 다윗>

이탈리아 조각가 미켈란젤로(1475-1564)

대리석, 1501-1504, 517 × 199 cm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메디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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