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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7(木曜日) “가장 고결高潔한 차우차우”


COVID-19이 세상을 온통 소용돌이로 집어삼키는 가운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오늘 아침, 두 달 전에 구조한 차우차우 ‘샤홀’이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동물병원 원장님으로부터 수술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 차우차우를 ‘검은 색’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홀’로 불렀다. 샤홀의 몸은 검은 색 털로 덮여있고 목 주변, 등 그리고 꼬리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초콜릿 색 털이 별도로 무성한 가발처럼 덥혀 있다. 샤홀이 초콜릿 색 꼬리를 흔들며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그전에 그렇게 그윽하고 고결한 동물을 본적이 없다. 물론 동물엔 인간도 포함된다.

내가 샤홀 소식을 듣고 상념에 잠겼다. 내가 이런 감정에 휩싸이는 이유를 가만히 더듬어 보았다. 내가 샤홀을 만난 날은 약 두 달 전인 6월 24일 장대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동네에는 아내에게 동네 유기견이나 학대를 받는 개들이 있다는 종종 소식을 전해주는 한 소년이 있다, 그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자신이 외딴 곳에 위치한, 쓰레기 처리장 구석에 거의 열 마리나 되는 개들이 갇혀있다고 알려주었다. 아내는 이 문자를 받고 이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냄새나는 처리장으로 가서 감금된 개들을 보았다. 그녀는 우리 안을 말끔히 청소해 주고 사료와 간식을 주고 집으로 돌아 왔다. 개들이 너무 많아 모두 집에 데리고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그 다음날, 6월 25일 빗발이 내려치는 오후 이 아이들을 구조하러 나섰다. 그 더러운 우리 안에 ‘샤홀’과 우리가 ‘선’과 ‘샤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흰색 믹스견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장에 발을 올려놓고 우리를 쳐다본다. 아내는 우리 안을 살펴보더니, 나에게 외쳤다. “차우차우 새끼들이 없어졌어요.” 어제 분명, 눈에 넣어도 괜찮을 숭고한 차우차우 새끼 여섯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 아내가 구조하러 왔다간 사실을 알고, 새끼들을 어디론가 숨긴 것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때는 그 즉시 실행해야한다. 그 선행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가져온다. 그 기적이란, 그 대상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연민의 확인이며, 그 연민이 만들어 내는 말도 비이성적인 용기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비이성적인 것들이다. 배려, 사랑, 용기, 정의, 헌신, 희망, 신뢰 같은 것들이다. 용기는 자신을 넘어선 신적인 행동을 자연스럽게 일으킨다. 아내는 자신이 어제 그 기적을 이룰수 있는 순간을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우리는 샤홀, 선, 그리고 샤인을 집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믹스견 선과 샤인은 금방 내 품에 안겼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상자 안에 이들을 넣고 자동차 뒷 자석에 올렸다. 선과 샤인은 처음 타보는 신기한 기계위에서 불안해 보였지만, 나의 눈을 보고 자신들이 좋은 곳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샤홀을 차로 데리고 오는 작업이다. 나는 온몸이 지네와 구더기로 가득한 샤홀의 목에 개 줄을 걸려고 시도했다. 샤홀은 목을 계속 돌리며 그 조그만 우리 안에서 빙빙 돌았다. 겨우 샤홀의 목걸이에 개 줄을 걸어 우리로부터 탈출시켜 앞자리 아내 발 앞에 앉도록 유도하였다. 우리는 이들을 집안에 들일 수가 없었다. 집안에는 진돗개 샤갈과 벨라, 그리고 4년 전 읍내 시장에서 구조한 시바견 예쁜이가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고 앞에서, 이들이 임시 거주할 수 있는 개집을 마련했다.

새로 구조한 개들이 내 삶에 들어와, 아침이 바빠졌다. 내가 아침산책을 시켜야할 반려견 숫자가 여섯 마리로 불어났다. 내가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한 달 동안, 아침이 바빠졌다. 나는 샤갈-벨라를 동네 야산으로 산책하기 전에, 새로운 식구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나는 샤홀를 산책시키면서 몇가지 다른 점을 발견하였다. 내가 간식을 주기 위해 ‘샤홀!’하고 부르면, 샤홀은 나를 우주가 정지한 듯 쳐다본다. 그 순간 샤홀은 간식이 아니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바라본다. 샤홀은 나에게 눈빛을 통해 영원한 순간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나는 그전에 이런 눈길을 본적이 없다.

샤홀의 이 눈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샤홀이 집에 왔을 때, 여섯 마리 새끼를 수유하느라 젖가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걷기가 힘들 정도로 부어 애처로웠다. 샤홀은 가슴을 안정시키는 약을 며칠 복용하더니 붇기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뒤뚱뒤뚱 걸었다. 내가 샤홀의 눈길을 조금 이해하지 시작한 것은 한참 후다.

우리는 서울로 이주하면서 샤홀, 선, 샤인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당분간 한남동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 입원시켜 건강점진을 받게 했다. 일생동안 감금되어 학대받은 개들의 건강을 검사하고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해서다. 동물병원 원장님은 샤홀은 나이가 4살 정도 되었고, 그 전에도 출산경험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샤홀을 묶어 놓고 씨받이로 학대해온 것이다. 우리가 샤홀을 발견했을 때도, 새끼를 여섯 마리나 출산했고, 그들에게 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장님의 말들 듣고 샤홀의 눈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샤홀은 그 사랑스런 눈빛으로 나에게 질문하고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눈빛에는 위로의 심정도 담아있다. 우리는 사라져버린 샤홀의 아이들을 찾으려고 많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샤홀은 눈빛에는 이런 심정도 담겨있다. “괜찮습니다. 내 자식을 앗아간 인간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저를 구조해줘서 고맙습니다.” 샤홀은 그 사랑스럽고 슬프고 감사하는 눈길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 탐스러운 초콜릿 꼬리를 흔들며 사자처럼 갈기가 덥수룩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보라색으로 간간히 수놓은 혀를 내밀어 산만한 내 시선을 영원한 순간으로 고정시킨다. 샤홀의 눈길은 지난 4년 동안 수많은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픈 눈길이면서, 그런 인간을 용서하겠다는 자비의 눈길이다.

저 눈길은 한없는 고통을 용서로 극복한 고결高潔함이다. 고결이란 자신을 엄습하여 비참하게 만들려는 고통을 초월하여, 그 운명을 수용하고 용서하며, 자신이 되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유지하려는 마음이다. 고통과 역경은 샤홀의 눈빛처럼 찬란하게 빛날 고결을 위한 준비였다. 누군가 샤홀의 고결은 눈빛으로 행복할 사람이 곧 등장하면 좋겠다.

사진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한 선과 샤인 가운데서 서서 나를 눈빛으로 홀리는 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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