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명세계와 동떨어진 채 일생을 사는 아마존 원주민도 ‘신’을 믿고, 현대문명의 세계를 받은 파리의 가톨릭신자도 ‘신’을 믿는다. 이들의 신에 공통점이 있을까? 아니면 한쪽은 맞고 다른 쪽은 틀리는가? 물론 당사자들에게 묻는다면, 정교한 이유를 들먹이며 자신들이 믿는 신이 옳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신에 대한 정의와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일생 종교를 공부하고 실천한 사제와 우주의 비밀을 푼 과학자에게도 당혹스럽고 풀기 어려운 질문이다. 랍비 헐버트 골드스타인(Herbert Goldstein, 1890-1970)은 유명한 랍비이자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특히 반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유대인들을 돕는데 큰 공적을 남겨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1929년 4월 베를린에 거주하던 위대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에게 급히 전보를 보낸다. 아이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이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미국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음은 전보 내용이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답신에 필요한 값은 지불했습니다.
50단어 이내로 설명해주세요.”
당시 미국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발표를 놓고 왈가왈부하고 있었다. 과학계뿐만 아니라 종교학계 인사들은 이 발견이 미칠 파장에 미리 전율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그리스도교인들은 우주가 신의 말로 한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특히 보스턴 지역 가톨릭 주교였던 윌리엄 헨리 오코넬William Henry O'Connell, 1859-1944)은 그의 상대성이론을 혐오하였다. 이 혐오는 물론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했지만, 그 보다도 자신이 소중하게 쌓아올린 우주창조에 대한 편견이 무식이 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오코넬은 상대성이론을 “모호한 궤변”이며 “무신론의 흉악한 망령”이라고 조롱했다. 골드스타인은 보스턴뿐만 아니라 전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가톨릭교회 주교의 화를 달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그래서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전보를 보낸것이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박해에서 벗어나 대거 뉴욕으로 이민해 자리를 잡으려는 참이었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미국 사회 내에서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아인슈타인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
그 신은 이 세상의 규칙적인 조화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심이 있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스물다섯 개의 독일어로 이루어진 답장을 보내왔다. 그의 답은 간결하지만 함축적이었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였으며 과학자였던 바뉘흐 스피노자(1632-1677)를 언급했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스피노자가 믿은 신’을 믿는다고 애매모호한 답장을 보냈다. 골드스타인이 믿은 신과 스피노자의 신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는 골드스타인의 신은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관심 있는 신’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다시 말해 교리에 맞게 잘 행동하면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는, 그런 신이라고 정의한다. 스피노자의 신은 다르다. 그 신은 ‘우주의 규칙적인 조화 안에서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다.
스피노자 반유대주의 피해 이민한 유대인이다. 그의 가족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특별한 신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는 자신 독특한 신앙관때문에- 암스테르담의 세파르디 유대인 공동체에서 추방당한다. 스피노자는 전통적인 유대교와 당시 암스테르담의 지배 종교였던 개신교 칼뱅 -교리를 무시하고, 신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조절하는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그 만물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만들고 유지하는 ‘내재적 신비’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이 신비를 인식하기 위해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나 자연 안에서 숨겨진 신비를 경험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일생을 “홀로” 지낸 인물이다.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휩쓸던 종교 재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마라노스’(Marranos, ‘돼지들’이라는 의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유대교를 재건했다. 자유로운 신관으로 인해 유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스피노자는 다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느니 차라리 종교 없이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당시 기술 산업의 최고 인기 분야였던 ‘렌즈 깎기’로 돈을 벌며 과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재야의 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의 철학적 사고에 매료되어 자신의 편지, 저작 혹은 일상대화에서 스피노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스피노자는 동시대 철학자 라이프니츠(1646-1715)와 데카르트(1596-1650)와 비교하여 극단적인 이성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주장을 이성을 통해서만 개진했다.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만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경험주의자들은 세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이 새로운 지식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아인슈타인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스피노자의 과학적 방법론은 초보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다. 아직 뉴턴의 만류인력이나 원자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인슈타인은 그를 흠모했는가?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 친구들과 스피노자의 사상에 심취했으며, 심지어는 네덜란드의 구두 수선 거리에 있는 스피노자의 집을 방문하거나 스피노자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다.
“내가 이 고귀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이지.
나는 그가 홀로 자신의 거룩한 후광(後光)으로
외롭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해.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지.
이 가르침이 인류에게 선사한 것은
위로하는 겉모습을 신뢰하지 말라는 거야.
그는 숭고하게 태어난 것이 분명해.”
아인슈타인이 스피노자를 사랑한 이유는 그의 사상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관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방법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이디아와 직관력은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티인은 스피노자가 주장하는 높은 차원의 지성의 존재에 동의했다. 이 지성은 자신을 자연의 조화와 아름다움에서 스스로 드러낸다. 이 지성은 ‘만물의 마지막 이론’이라 불린다. 자연, 본질, 그리고 신이 합쳐진 삼라만상의 원칙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저작 <에티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성에 대한 추구라고 말한다. ‘만물의 마지막 이론’인 이 지성에 다가가는 행위가 신에게 접근하는 것이며 ‘아모르 데이 인텔렉투알리스’(amor dei intellectualis) 즉 “지적인 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스피노자의 신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신과는 다르다. 그가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무신론자와 이단자로 낙인찍힌 이유다.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처럼 전통적인 신으로부터 위안을 얻거나 그 종교로부터 도덕적인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법칙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교할 뿐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하고 심오해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 탐구할수록 우리는 경외심으로 가득 차게 되어 자연스레 우리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주에 있어서 신의 섭리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가 당대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것과 달리 아인슈타인은 운이 좋은 시대에 살았다. 아인슈타인은 1950년대부터 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살았다. 사람들이 점점 그의 종교관에 관심을 갖자 그는 용감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종교와 그 핵심을 고백했다. 그는 인간이 맹목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알지 못하게 하는 권위에 도전했다. 어쩌면 도전했다기보다 스스로 그 진리를 찾아 나섰다. 그는 과학에서처럼 종교에서도 맹목적으로 수용된 아이디어, 이론, 모델 그리고 교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찾아 나섰다. 아인슈타인 인간의 정해놓은 학문을 넘어선 경외와 신비를 신이라고 정의한 것 같다.
사진
<스피노자 초상화>
유화, 1665
독일Herzog August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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