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의 시인들, 철학자들, 학자들은 근대정신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찾았다. 그들은 <안티고네>는 그리스 비극들 중 가장 뛰어난 백미白眉일 뿐만 아니라 인간정신의 최선이 구현한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독일철학자 헤겔(1770-1831) 은 칸트의 이념과 현실이라는 현실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철학적인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그에게 <안티고네>는 “인류의 가장 숭고한 작품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된 모든 면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에게 <안티고네>는 인간 의식의 진보이자 도약이다. 그는 이 작품 안에 등장하는 ‘국가권력’과 ‘개인인권’의 충돌과 갈등이 근대정신을 탄생시키는 씨앗이라고 평가한다. 안티고네의 삼촌인 테베의 왕 크레온이 상징하는 ‘국가권력과 법’이 안티고네가 자신의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본능적이며 사적인 사랑과 의무’와 충돌한다. 헤겔에게 이 충돌은 더 높은 차원의 ‘정신’을 구축하는 발판이다. 안티고네는 이 충돌을 마다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획득하려는 인간은 항상 비극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도시와 국가가 정한 법과 개인이 속한 가족 안에서 형성된 양심이 만들어낸 위험하고 애매모호한 경계 안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영국 문학비평가 조지 스타이너George Steiner(1929-)는 헤겔의 <안티고네> 해석을 설명하였다. 바로 이 위험천만한 파괴적인 지점이 인간을 탁월하게 만들며, 인간의 의식과 영혼을 고양시켰다. 안티고네는 스스로 의식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고 행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안티고네는 법과 양심의 갈등 속에서 자신이 선명하게 보여준 명료함과 순수함을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래된 신화와 구태의연한 종교가 표현하는 가시적이며 자신의 정체가 분명한 신들을 넘어선, 비가시적이며 추상적인 원칙을 상징하는 신들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소개한다.
헤겔의 이분법적인 도식과 평가엔 약점이 있다. 크레온을 국가권력으로, 안티고네를 개인양심으로 쉽게 구분한다. 하지만 안티고네가 자신의 식구에 대한 사랑인 ‘필리아’philia가 자신이 근친상간의 자식임을 감안하면 그런 구분의 정당성이 훼손된다. 안티고네가 상징하는 가치는 국가와 개인, 법과 양심을 초월하는 어떤 가치다. 소포클레스는 그 가치가 국가의 기반으로 다지고 그 안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행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 ‘도시’는 종교와 정치가 이루어지는 사적이면서 공적인 공간이다.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6년에 아테네 외곽 콜로누스라는 시골에서 무기와 군장을 만드는 부유한 상인 소필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480년에 살라미스 전쟁에서 승리를 축하기 위한 아테네인들의 합창단을 이끄는 일을 하면서 그리스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비극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468년,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거행된 비극경연대회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당시 최고의 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우승하였다. 소포클레스는 443년엔 페리클레스가 등극하여 아테네 르네상스를 일으킬 때, 아테네 재정을 책임지는 재정관들의 한명으로 선출되었다. 441년엔 아테네 군대를 지휘하는 열 명의 장군들 중 한명 선출되어 아테네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이런 아테네의 중요한 관직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그가 <안티고네>라는 비극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배경은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의 갈등이다. 오이디푸스가 죽은은 두 아들은 테베를 번갈아가면서 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가 왕좌를 돌려주지 않자, 폴리니케스와 그의 군대는 테베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 중 폴리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 모두가 전사한다. 이 틈을 타, 이들의 삼촌인 크레온이 테베의 왕이 된다. 그는 자신의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법령을 내린다.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사수하다 전사했기 때문에, 국장으로 그의 시신을 성대하게 매장하지만, 폴리니케는 반란군이기 때문에, 시신을 성 밖에 방치하고 누구든 그를 매장하는 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때 성 밖에 이들의 여동생들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등장한다. 안티고네는 이스메네에게 크레온의 국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오빠인 폴리니케스의 시신을 매장하겠다고 말한다. 이스메네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불의한 일이며 ‘여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안티고네는 화를 내면서 폴리니케스를 홀로 매장하려한다. 크레온은 조카인 안티고네가 국법을 어기려 시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이 신들의 법을 어기는 행위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크레온은 더욱더 화가나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사형에 처할 것을 명령한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와 결혼할 참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형명령을 거둘 것을 요구하지만 실패하자 가출한다. 크레온은 하이몬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두 명중 이스메네는 살리고, 안티고네는 돌로 쳐 사형시키지 않고 동굴 속에 감금하여 굶어 죽음에 이르도록 명령을 변경한다. 그때 장님 예언자 티레시아스가 등장하여 크레온에게 경고한다. 신들이 크레온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아 아들 하미몬이 죽을 것이다. 크레온은 티레시아스의 예언에 화가 났지만, 아들의 운명을 걱정하여 폴리니케스를 매장하고 안티고네를 동굴에서 풀어준다. 그러나 크레온의 결정이 너무 늦었다. 안티고네는 스스로 목매달아 자살하였고 하이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의 부인인 유리디케는 하이몬의 자살소식을 듣고 크레온은 저주하며 자살한다. 혼자 남은 크레온은 이 모든 비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빨리 죽기만을 원한다. 연극의 마지막에 합창대의 노래가 엄숙하게 울려 퍼진다. 오만이 비극적인 죽음을 일으켰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질문한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권보다 중요한가?” 혹은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찾기 위해 고향 테베로 들어오는 길에 괴물 스핑크스를 만난다. 스핑크스는 그에게 수수께끼 하나를 던진다. “아침엔 네발로 걸어 다니고, 점심에 두발로, 그리고 저녁에 세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았을 때, 소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소포클레스는 대답을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형식을 빌려 대답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소포클레스의 7개 비극은 모두 “인간은 무엇인가?”를 일관되게 묻는다. 이 질문은 소포클레스의 테바이 비극이라고 불리는 세 비극인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그리고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중에서 특히 <안티고네>에서 부각된다. <안티고네>는 개인과 국가 간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개인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가 만든 비극 작품의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안티고네>의 복잡한 사건으로부터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묘사에 소포클레스가 정의하려는 인간이 숨겨져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도시 안에 살면서 가장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도시 안에 사는 동물, 축자적인 의미에서 ‘쪼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 즉, ‘정치적인 동물’이다. 도시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수혜하지 못한다면,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살수 없다. 도시생활은 인간다운 삶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문제는 이 필수적인 요건이 자신을 위한 최선의 삶을 지향할 때,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도시국가나 개인이 최선을 추구하는 삶은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적인 삶이며, 철학적인 삶은 정의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안티고네>에서 보여준 비전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제시한 비전과는 사뭇 다르다.
소포클레스는 선의의 경쟁자이나 동반자인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기원전 5세기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시대에 등장하여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본질에 숙고한다. 이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은 역동적이며 혼란스러운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문화를 묘사한다. 그 당시 아테네에서는 전통적인 아테네 삶이 민주주의 도입으로 붕괴되고 참주들과 민중선동가들이 등장하여 권력을 농단하고, 새로운 세계관이 수입되고, 해상무역을 통해 부자상인들이 등장하였다. 아테네는 그리스 반도와 에게 해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스파르타와 군사경쟁하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작가들은 아테네 시민들을 위한 도덕과 윤리의 스승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비극경연 작품이 공연되는 ‘디오니시아 축제’는 그들의 교실이 된다. 이들은 최고의 감동적인 비극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경쟁하는 과정을 자신과 아테네 시민들에 대한 가르침으로, 아테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적인 활동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다. 소포클레스는 가장 인기 있는 비극작가였다. 고대 로마시대 <영웅전> 작가인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소포클레스의 승리는 극적이었다. 소포클레스가 승리하기 전까지, 비극 경쟁의 승리자는 투표를 통해 선택되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가 참가한 비극경연에서는, 당시 정치지도자인 키몬과 다른 연극 후원자들이 비극공연을 직접 보고 결정하였다. 그가 27살이 되던 기원전 468년 당시 최고 작가였던 아이스킬로스와 경쟁하여 이겼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패배이후 시실리로 떠났다. 그 이후 그는 매년 열리는 디오니시아 축제 비극공연 경쟁에서 18번이나 우승하였다. 그는 62년간 비극작가와 정치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아테네인들의 스승이자 인생의 의미를 비극을 통해 찾아가는 구도자였다. 그는 아테네인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인간은 무엇인가?”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의 양심과 행복을 파괴하는 비이성적인 권력으로부터 그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구조는 무엇인가?” 이 역설적인 두 질문은 <안티고네>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진
<폴뤼니케스 앞에 있는 안티고네>
그리스 화가 니키포로스 뤼트라스 (1832–1904)
유화, 1865, 100 cm x 157 cm
아테네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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